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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엑손·셰브론, 가이아나 유전 패권 경쟁…헤스 인수 중재 '운명의 날'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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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엑손·셰브론, 가이아나 유전 패권 경쟁…헤스 인수 중재 '운명의 날' 임박

110억 배럴 '스타브록' 광구 가치 수십조…계약상 '우선매수권' 해석이 관건
중재 결과에 미 석유업계 지각변동 촉각…양사 미래 전략·시장 구도 재편 예고
가이아나의 '세기의 유전'을 둘러싼 석유 공룡들의 쟁탈전. 사진은 지난해 해상 생산 지원 항만 공사가 한창이던 가이아나 현장의 모습.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가이아나의 '세기의 유전'을 둘러싼 석유 공룡들의 쟁탈전. 사진은 지난해 해상 생산 지원 항만 공사가 한창이던 가이아나 현장의 모습. 사진=AP/뉴시스
세계 굴지의 석유 기업인 엑손모빌(XOM 0.06% 상승)과 셰브론(CVX 0.92% 상승)이 이번 주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석유 사업 중 하나의 권리를 두고 정면으로 맞붙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 기업은 최근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발견지로 꼽히는 가이아나 해상 '스타브록 광구'의 지분을 두고 법 다툼에 휘말렸다. 이 경쟁은 두 회사 고위 경영진 사이의 관계를 냉각시켰으며, 석유 업계의 기존 순위마저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분쟁의 핵심은 셰브론이 2023년 10월 530억 달러(약 72조 3132억 원)에 헤스(Hess)사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헤스는 이 광구 지분 30%를 가지고 있으며, 엑손모빌은 45%, 중국 CNOOC는 2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사안을 잘 아는 여러 관계자에 따르면, 엑손모빌의 이러한 저지 시도는 셰브론 고위 경영진의 큰 반발을 샀고, 한때 관계가 좋았던 두 거대 경쟁사의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와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종종 함께 식사하며 세계 사업의 공동 관심사를 전화로 논의하는 사이였으나, 이 관계는 현재 싸늘해졌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 '황금의 땅' 가이아나 스타브록 광구는?

스타브록 광구에는 석유와 가스가 최소 110억 배럴 묻힌 것으로 추산되며, 현재 하루 64만 5000배럴을 생산한다. 이 생산량은 2027년까지 하루 130만 배럴로 확대할 예정이며, 미국 내 대형 셰일 유전 전체 생산량을 웃도는 규모다.
◇ 국제 중재대에 오른 '우선매수권' 공방

미국 석유 산업의 중심지인 휴스턴을 놀라게 한 이 싸움은 현지 시간 월요일 영국 런던의 국제상공회의소(ICC)에서 비공개 중재 심리가 시작하면서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2025년 3분기(8~9월)에 최종 판정이 나올 예정이고, 이 판결은 엑손모빌과 CNOOC가 헤스의 지분 30%에 대한 셰브론의 입찰을 막을 권리가 있는지를 판가름한다.

피커링 에너지 파트너스의 댄 피커링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는 석유 탐사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요즘 대규모 저비용 유전이 얼마나 막대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세 회사 모두 중재 승리를 자신하고 있으며, 판결은 기밀 계약서의 특정 조항, 특히 우선매수권 해석에 달렸다.

엑손모빌과 CNOOC는 컨소시엄 계약에 따라 헤스의 지분을 제3자에게 팔 때 기존 파트너가 먼저 인수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셰브론은 이번 인수는 '자산 매각'이 아닌 '기업 인수'이므로 우선매수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 셰브론 성장 확보 대 엑손 권리 수호 '양보 없는 싸움'

셰브론에 이번 중재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헤스는 미국 노스다코타 바켄 셰일 지대의 주요 사업자이지만, 핵심 자산은 단연 가이아나 유전이다. 셰브론은 헤스 인수를 통해 자사 원유 생산 자산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2030년 이후에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려 한다. 반면 엑손모빌은 이미 이 사업을 이끌어왔고, 헤스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주장하며 셰브론의 인수를 막고 있다.

지난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셰브론은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주요 확장 사업을 시작했으며, 미국이 현재 '아메리카만'으로 부르는 멕시코만에서 대규모 새 석유 생산 시설을 가동했다. 또한 2026년 말까지 세계 인력의 최대 20%를 줄이는 비용 절감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셰브론이 중재에서 진다면, 분석가들은 헤스와 똑같은 잠재력을 가진 다른 인수 대상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목요일에 미국이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서 셰브론이 운영하도록 허가한 면허가 화요일 만료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엑손모빌의 도전이 셰브론에 단순한 골칫거리를 넘어선 까닭은 이것이 투자자 행동주의 시대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뉴욕대학교 에너지·기후 정의 및 지속가능성 연구소의 에이미 마이어스 재피 소장은 "훌륭한 전략을 갖추지 못하면 기업 사냥꾼이나 행동주의 투자자에게 공격받기 쉽다"고 말했다. 재피 소장은 이어 "석유 회사 경영진과 그들이 선택하는 전략이 이해관계자 그룹 내부에서 공격받을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엑손모빌은 이번 분쟁에서 지더라도 단기적으로 큰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재단의 결정이 나올 때쯤이면 셰브론이 헤스 인수를 발표한 지 거의 2년이 지난 때여서, 그동안 엑손모빌은 다른 대형 거래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12월 분석가들과 한 전화 회의에서 "엑손모빌은 셰브론과의 거래에서 헤스의 가이아나 지분 가치를 고려할 주주의 이익을 생각할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 업계 지각변동 예고…에너지 시장 판도 주시

엑손모빌은 오랫동안 셰브론보다 생산량이 더 많고 수익성도 높아 업계의 '큰형' 노릇을 해왔다. 분석가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엑손모빌 주가가 셰브론 주가를 앞질렀지만, 헤스와의 합병은 셰브론이 이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거래는 미국 석유업계 대형 인수합병(M&A) 가운데 하나로, 결과에 따라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국제적 위상과 장래 전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인수가 늦어지거나 무산되면 헤스 주주들은 불확실성을 겪게 되고, 가이아나 정부 역시 개발 속도와 투자 안정성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가이아나 유전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근본 까닭은 이곳이 세계적으로 드물게 남은 대규모·저비용 석유 매장지이기 때문이다. 이 유전에 앞으로 에너지 시장 주도권과 수십 년간의 수익이 달린 만큼, 두 회사는 법과 전략 면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서고 있다. 이번 분쟁 결과는 세계 에너지 시장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