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美 셰일 붐 끝났나”...유가 급락에 트럼프 관세로 '설상가상'

글로벌이코노믹

“美 셰일 붐 끝났나”...유가 급락에 트럼프 관세로 '설상가상'

미국 텍사스주 이글 포드 셰일 유전의 석유 펌프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텍사스주 이글 포드 셰일 유전의 석유 펌프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원유 기업들이 투자 지출을 줄이고 시추 장비 가동을 중단하는 등 10여 년간 이어져 온 셰일 붐의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미국 원유 업계의 이러한 긴축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로 비용이 상승한 데다, 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수출국기구와 동맹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OPEC+)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로 하면서 미국 내 유가 전망이 한층 어두워진 데 따른 것이다.

오클라호마주에 본사를 둔 데번 에너지(Devon Energy)의 클레이 개스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현재 우리는 고도의 경계 상태에 있다"면서 "더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면서 모든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기관 S&P 글로벌 커머더티 인사이트는 내년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이 올해보다 1.1% 감소한 1330만 배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생산량 감소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을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처음 있는 일이다. 팬데믹 당시에는 수요 붕괴로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며 텍사스, 노스다코타 등에서 파산이 잇따른 바 있다.

미국산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지난 23일 배럴당 61.5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올해 고점 대비 약 23% 하락한 수치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의 분기별 에너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셰일 기업들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유가가 최소 배럴당 65달러는 되어야 한다.

“버텨야 할 때”...위기의 美 에너지 산업


덴버에 본사를 둔 SM에너지의 허버트 보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지금 업계의 핵심 메시지는 ‘버텨야 한다’이다"라고 밝혔다.

FT에 따르면 셰일 생산 감소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질주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셰일 혁명은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량 공급하며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국내총생산(GDP)과 고용 시장을 끌어올린 동시에 수출을 확대해 무역수지 개선에도 기여해 왔다.

또한 미국 내 셰일 생산 급증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OPEC 국가들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덕분에 백악관은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에 대한 제재도 더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energy dominance)'을 확보하겠다며 시추 및 생산 확대를 재차 공언해 왔다.

FT는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트럼프의 전임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기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이마저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가 50달러 붕괴 시 하루 30만 배럴 감산


미국 셰일업체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스콧 셰필드 전 CE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유가가 배럴당 50달러까지 떨어진다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최대 30만 배럴이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셰필드는 특히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확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미국 셰일업체들이 확보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우디는 시장 점유율을 되찾으려 하고 있으며, 향후 5년 안에 그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 내 육상 시추 장비 수는 현재 감소세다. 석유서비스업체 베이커 휴즈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의 육상 시추 장비 수는 총 553개로, 전주 대비 10개 줄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26개 감소했다. 이는 미국 내 시추 활동이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FT에 따르면 대형 에너지 기업들은 또한 이미 인력 감축에 나섰고, 투자 계획도 줄줄이 축소하고 있다. 셰브론과 BP는 전 세계적으로 총 1만5000명 규모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에너지 시장 분석기관 엔버러스(Enverus)에 따르면, 엑손모빌과 셰브론을 제외한 미국 내 상위 20개 셰일 생산업체는 올해 자본지출 예산을 약 18억 달러(3%)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의 트래비스 스티스 회장 겸 CEO는 "이런 환경에서는 시추 장비를 줄이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게 전략"이라며 "최근 논의한 모든 대화의 결론은 ‘이 유가로는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가 하락과 공급 과잉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도 업계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석유 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된 관세는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시추공 내부를 감싸는 데 사용되는 강관인 ‘케이싱(casing)’ 가격이 지난 분기에만 10% 급등했다. 케이싱은 시추 과정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요소다.

미국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콘티넨탈 리소스의 더그 롤러 CEO는 “경제성이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몇 분기 동안 자본 지출을 더욱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