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를 상대로 전면적인 공습을 감행하면서 수년간 유지해온 ‘억제 중심’의 군사 전략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각) 분석했다.
NYT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과의 충돌을 국지전에 국한해 왔지만 하마스의 2023년 10월 기습 이후 전례 없는 대응에 나서며 중동 지역의 군사·정치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동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며 “이번 작전은 이란 내부의 변화까지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사실상 궤멸시킨 데 이어 레바논 남부에 주둔해 온 헤즈볼라 지도부 대부분을 암살했고,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지난해 12월 붕괴됐다. 시리아는 이란이 주도해온 역내 동맹의 핵심 축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 안보 당국자들은 이같은 전략 변화가 하마스의 2023년 공격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아모스 야들린 전 이스라엘군 정보국장은 “10월 7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위협이 커지도록 방치하고 정보기관의 사전 경고에 의존해왔다”며 “그러나 그날의 충격이 모든 사고방식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더 이상 기습을 기다리지 않으며 선제적 공격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략은 과거 이스라엘이 건국 초기에 취했던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 1967년 6월 이집트가 병력을 국경에 배치하자 이스라엘은 먼저 선제공격을 감행해 6일 전쟁을 일으킨 바 있다. 야들린 전 국장은 “그때처럼 지금도 우리는 기습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작전은 수개월간의 군사적 자신감 회복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하마스를 상대로는 즉각적인 군사 대응에 나섰지만 헤즈볼라와 이란과의 정면 충돌은 한동안 피했다. 전쟁 발발 직후인 2023년 10월 네타냐후 총리는 헤즈볼라에 대한 선제타격 계획을 철회했으며 지난해에도 이란 본토에 대한 공격은 제한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고위급 지도자들을 잇달아 제거하면서 군사적 주도권을 쥐었다. 이어 이스라엘 공군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공습으로 제거하고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이란이 발사한 대규모 미사일을 방어하는 데도 성공하면서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이란 핵시설 타격의 기회를 포착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의 역내 영향력은 급감했지만 이스라엘이 직면한 가장 오래된 난제, 즉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대규모 파괴를 겪었고 하마스는 세대 단위로 위협 능력을 상실했지만 전후 복구 및 정치적 해법은 전무한 상황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잔존 세력에 통치를 맡기거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개입을 허용하는 방안 모두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치피 리브니 전 이스라엘 외교부 장관은 “우리는 결국 나쁜 선택지들만 남은 상황에 직면했다”며 “점령이냐 혼란이냐의 선택이 아닌, 지역 내 온건한 세력들과의 협력을 통해 현실을 바꾸는 외교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란과의 전쟁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스라엘이 분명한 목표 없이 전면전을 이어갈 경우 가자지구와 마찬가지로 출구 전략 없이 장기전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님로드 노빅 전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는 “군사적으로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비전이 불확실하다”며 “가자지구처럼 또다시 끝이 없는 전쟁에 빠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이스라엘은 미국의 협조를 바라고 있지만 미국이 이란 핵시설 파괴 작전에 동참하지 않고 이란이 자발적 중단도 거부할 경우 이스라엘의 독자 전략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