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유럽 각국에서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럽 시민들과 정부는 미국 기술이 자국의 안보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인정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키우며 자국 중심의 인프라와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흐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로존의 이같은 흐름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소버린 AI(Sovereign AI)’ 구상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 美 기술 벗어나려는 유럽의 흐름
창립자 마이클 비르트스는 “과거에는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에 민감한 소수만 찾았지만, 지금은 정치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일반 시민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색엔진 에코시아는 유럽연합(EU) 전체에서 검색 유입이 전년 대비 27% 늘었으며 스위스 기반 이메일 서비스 프로톤메일의 유럽 내 사용량도 11.7% 증가했다.
반면 알파벳의 지메일은 같은 기간 1.9% 감소했다. 영국의 인터넷 규제 전문가 마리아 패럴은 “이제는 미용사도 어떤 이메일 서비스를 써야 할지 고민하는 시대”라고 전했다.
◇ EU 규제와 국산화 병행…한국과 유사한 문제의식
EU는 이 같은 흐름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자국 기반 클라우드 사용을 확대하고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미국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연정 합의에 따라 디지털 인프라 자립을 추진 중이며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공공 IT 시스템을 전면 오픈소스로 전환했다. 독일은 위성통신 지원도 프랑스 위텔샛을 활용해 머스크의 스타링크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의 이같은 접근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추진 중인 ‘소버린 AI’ 전략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대통령은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주권과 경제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으며 정부는 국산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공공 GPU 인프라 확충, 클라우드 자립 등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미국 기술 중심의 글로벌 AI 흐름에 대한 대응이자 데이터·인프라·서비스 전반에서의 ‘탈미국’ 구상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디지털 주권 전략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 기술 종속 구조 속 한계도 여전
다만 구조적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빌 버딩턴은 “푸시 알림, 콘텐츠 배포망(CDN), 라우팅 등 핵심 인터넷 구조 자체가 미국 기업 인프라에 얽혀 있어 완전한 독립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에코시아나 프랑스의 검색엔진 콴트조차도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결과와 클라우드 서버를 일부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구글의 유럽 내 방문 수는 103억건에 달했으며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지난해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1000억달러(약 139조3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런 현실은 한국의 ‘소버린 AI’ 추진이 단지 기술 개발에 그쳐서는 안 되며 제도적·생태계적 접근이 병행돼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자발적 거부 확산…“이젠 규제가 병행돼야”
유럽 시민들 사이에서도 ‘미국 기술 탈피’ 움직임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바이프롬EU’는 가입자 수가 21만명을 넘었고 “드롭박스를 해지하고 프로톤드라이브로 옮겼다”는 게시글도 확인됐다. 메신저 앱 시그널은 3월 유럽 내 설치 수가 전달보다 7% 늘어난 반면, 메타의 왓츠앱은 정체 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디지털 권리운동가 로빈 베르존은 “시장 구조가 워낙 고착돼 있어 소비자 선택만으로는 역부족이며, 강력한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아마존·메타·알파벳 등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한 이후 유럽 내 반발은 더욱 거세졌고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미국인을 검열하는 외국 정부 관계자에 대한 비자 제한”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유럽과 한국은 서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지만 ‘기술 자립’과 ‘주권 확보’라는 문제의식만큼은 동일 선상에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