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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기회의 땅' 유럽 찾은 KF-21…'정치 장벽'에 막힌 中과 운명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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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기회의 땅' 유럽 찾은 KF-21…'정치 장벽'에 막힌 中과 운명 갈렸다

러-우 전쟁에 재무장 나선 유럽…수백조 원대 전투기 '큰 장' 열렸다
中, '전략적 경쟁자' 낙인에 고전…韓, K-방산 신뢰도 업고 '순풍'
유럽 시장에서 정치 신뢰 부족으로 외면 받고 있는 중국 전투기 J-10C. 사진=X이미지 확대보기
유럽 시장에서 정치 신뢰 부족으로 외면 받고 있는 중국 전투기 J-10C. 사진=X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재무장에 나선 유럽의 전투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유럽 각국이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 속에서 미국과 유럽의 기존 강자들이 주도권을 다투는 가운데, 중국과 한국이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하며 예상치 못한 경쟁 구도가 펼쳐졌다. 그러나 ‘전략적 경쟁자’라는 정치 족쇄에 발이 묶인 중국과 달리, 한국은 K-방산 성공 신화를 발판 삼아 유럽 시장의 ‘실속 있는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유라시안 타임스가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 거친 경종을 울렸다. 수십 년 평화에 안주하던 유럽 국가들은 국방 태세를 다잡고자 서둘러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 최대 8000억 유로(약 1262조 원)를 동원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준비태세 2030'을 발표했다.

30개 유럽 회원국을 포함한 나토(NATO) 역시 국방비 지출 목표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높이기로 합의했다. 늘어난 국방 예산의 상당 부분은 신형 전투기 구매에 쓰일 전망이다.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이미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재 시장의 최강자는 록히드 마틴의 F-35와 프랑스 다쏘 항공의 라팔이다. 특히 F-35는 13개 유럽 국가가 운용 중이거나 도입할 예정이며, 라팔 역시 그리스, 크로아티아 등이 도입하며 나토 회원국 사이의 상호운용성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유럽 시장을 노리는 주요 전투기.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유럽 시장을 노리는 주요 전투기. 자료=글로벌이코노믹

◇ 中, 기술력 앞세워도 '정치 장벽'에 좌절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한국이 유럽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중국은 최근 파리 에어쇼에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J-20, J-35와 4.5세대 J-10CE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특히 J-10CE가 인도-파키스탄 공중전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고 주장하며 서방과 기술 격차를 해소했다고 자신했다. 나아가 유럽에는 없는 6세대 전투기(J-36, J-50)까지 시험 중이라며 기술 우위를 과시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전투기 거래는 성능만큼이나 지정학적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수 전문가는 전투기 계약이 성능이나 기술력만큼 지정학 파트너십에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미국 랜드 연구소의 티모시 히스 선임 국제 국방 연구원은 "라팔은 입증된 오랜 운용 역사를 가졌고, 유럽은 중국을 전반적으로 불신한다"고 말했다. 허드슨 연구소의 리셀로테 오드가르드 교수도 "전투기 계약은 정치 결정"이라며 "미국이나 중국 같은 전략적 경쟁자한테서 무기 구매를 꺼리는 나라들에 라팔은 좋은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로서는 중국산 전투기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K-방산 신뢰도 업은 韓…'정치 리스크 제로'가 최대 무기


반면 중국의 실패는 한국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면서도 중국과 같은 정치 부담이 없는 한국은 유럽 시장에서 독자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미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등에 K-9 자주포를 대규모로 수출해 유럽 시장에서 K-방산의 신뢰도를 입증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 성공을 발판으로 FA-50 경공격기에 이어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유럽 수출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다. 히스 연구원은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가 없어 미국 항공기를 살 수도 있지만, 중국을 불신해 중국산은 사지 않는 나라들에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 방산업체에 가장 중요한 경쟁자"라고 평가했다.

신동학 KAI 국제사업개발담당 부사장은 "이미 폴란드에 수출했으며 KF-21로 바꾸도록 다시 마케팅하고 있다"며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산업 협력을 제안하며 활발하게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가격 경쟁력은 물론,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등 다른 경쟁국이 제시하기 어려운 유연한 선택지를 강점으로 내세운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KAI는 4.5세대 전투기와 무인기 기술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6세대 전투기로 전환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의 기술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유럽 전투기 시장은 미국과 프랑스의 강세가 여전한 가운데, 중국은 정치 신뢰 부족의 벽을 넘지 못하는 반면 한국은 실제 수출 성과와 정치 수용성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는 모양새다. 오드가르드 교수는 "(한국은) 유럽에서 계속 잘 팔릴 것이며, 유럽 방산 기업과 파트너십도 찾기 시작할 것"이라며 "중국 무기 생산 업체와 달리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의 큰 이점"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적 위험이 없다는 점이야말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한국의 가장 큰 경쟁력인 셈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