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원료 95% 수입 의존, 특정국 편중 심각… 국제 정세 불안에 돌파구 모색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계기 ODA·수출금융 240억 달러 약속... 민간 투자도 본격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계기 ODA·수출금융 240억 달러 약속... 민간 투자도 본격화

세계은행은 청정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배터리 관련 광물 수요가 2050년까지 최대 500%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SK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같은 세계적인 배터리 생산 기업을 보유한 한국으로서는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사활이 걸린 문제다. 실제로 한국은 핵심 광물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 공급망 안정이 절실하다.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이다. 세계 광물 매장량의 30% 이상을 품고 있고,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에 걸친 '미네랄 벨트'는 세계 코발트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콩고민주공화국만 해도 세계 코발트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20년 전 '자원 외교' 씨앗, 정상회의로 결실
사실 한국의 아프리카 자원 개발은 2000년대 중반 '자원 외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의 니켈·코발트 사업에 대규모 지분을 투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한국광물자원공사(KORES)와 한국무역보험공사(K-Sure) 등도 국내 기업의 아프리카 광산 사업 진출을 도왔다. 비록 일부 사업에서 수익성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때의 경험은 앞으로 아프리카와 외교와 사업을 펼칠 초석이 됐다. 노무현(2006년), 이명박(2011년), 박근혜(2016년)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역시 외교 자산을 쌓는 데 보탬이 됐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순방 때 첫 한-아프리카 포럼을 열고, "포럼을 격년제 아프리카 정상회의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 100억 달러 ODA 약속... 민관 '원팀' 아프리카로
오랜 염원은 2024년 6월 출범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로 결실을 봤다. 이 회의로 한국과 아프리카의 광업 협력은 새 전기를 맞았다. 공동 비전 선언문은 "핵심 광물 관련 산업 발전을 이끌기" 위해 "서로 이익이 되는 협력과 지식 공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100억 달러(약 13조 5980억 원)로 늘리고 140억 달러(약 19조 372억 원) 규모의 수출 금융을 제공해 국내 기업의 진출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성과도 나왔다. 한국은 탄자니아와 25억 달러(약 3조3995억 원) 규모의 경제동반자협정(EPA) 및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을 약속하며 핵심 광물 접근권을 확보했고, 마다가스카르와도 핵심광물 개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포스코는 탄자니아 등에서 한 해 9만 톤의 천연흑연을 확보해 2030년까지 배터리 음극재 생산량을 4배(32만 톤)로 늘린다는 전략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KOMIR)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도 현지 광물 탐사와 개발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 LX인터내셔널 같은 다른 기업들의 아프리카 사업 참여도 활발하다.
◇ '책임 있는 공급망' 구축… 지역 안정에도 보탬
한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아프리카의 지정학 구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이 지원하는 타자라 철도에 맞서 G7+가 지원하는 로비토 회랑에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나오면서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다. 또한 M23 반군 같은 무장단체의 자금원이 되는 '광물 세탁'이나 러시아 바그너 그룹(Wagner Group) 같은 민간 군사 기업의 개입으로 어지러워진 지역 정세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이를 위해 인권과 환경을 살피는 '책임 있는 공급망'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다.
한국의 아프리카 광물 참여 확대는 전기차 배터리부터 스마트폰에 이르는 세계 공급망을 재편하고, 현지 사회 기반 시설과 안보에 보탬을 줘 국제 외교 지형까지 바꿀 힘을 지녔다. 정부의 목표는 아프리카와 협력해 중국 같은 특정 나라에 대한 핵심 광물 의존도를 50% 밑으로 낮추는 것이다. 아프리카 자원 개발이 처음은 아니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업의 빠른 실행력이 맞물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대륙의 성장에 한국이 뜻깊은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