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 구글이 12년 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직접 스마트폰을 조립해 출시했던 ‘모토X’ 프로젝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애플 아이폰 미국 생산’ 압박 속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6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2013년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뒤 ‘미국에서 만든 스마트폰’이라는 상징성을 앞세워 모토X 생산라인을 미국에 구축했다. 당시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위치한 8개 미식축구장 규모의 공장에서 하루 수만 대의 스마트폰을 조립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 “미국산 스마트폰은 애국적 상징”…결과는 참담
당시 구글은 “미국은 제조 능력을 잃었고 인건비가 너무 비싸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도전한다”고 선언하며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소비자가 수십 가지 색상과 재질, 심지어 대나무나 호두나무 소재를 고를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장에서 최종 조립만 담당하며 부품은 아시아에서 수입했지만 미국 내에서 생산한다는 점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다.
모토로라 모빌리티 최고정보책임자(CIO)였던 스티브 밀스는 “우리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소비자들이 생각보다 ‘미국산’이라는 점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 “아이폰 미국 생산? 가격 3배 뛸 것”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애플 아이폰은 반드시 미국에서 제조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대해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면 가격이 최소 3500달러(약 488만원)는 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17년 포춘 컨퍼런스에 참석한 자리에서 “중국이 싸서가 아니라 숙련된 기술인력이 훨씬 많기 때문에 생산 거점이 되는 것”이라며 “미국에선 금형 설계 기술자를 한 방에 모으는 것도 어렵지만 중국에선 축구장 여러 개를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토X 프로젝트 당시에도 모토로라는 이스라엘, 헝가리,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에서 엔지니어를 데려와 포트워스 공장을 운영했다. 일반 조립공은 현지에서 수천명을 고용했지만 부품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수입했고 이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공장은 외국산 부품에 세금 혜택이 있는 무역지대에 설치됐다.
◇ “판매만 잘 됐다면 결말 달라졌을 것”
모토X는 출시 당시 ‘오케이 구글 나우’ 음성 인식 기능과 곡선형 뒷면 디자인으로 주목받았지만 16GB 저장 용량과 평범한 화면 품질로 경쟁사보다 밀렸다. 2014년 1분기 모토X의 글로벌 판매량은 90만대였지만 같은 기간 애플은 아이폰5s를 2600만대 팔았다.
생산 초기에 3800명이 근무했던 포트워스 공장은 9개월 만에 인원이 700명 이하로 줄었고 결국 폐쇄됐다.
당시 모토로라 공급망 책임자였던 마크 랜들 전무는 “미국 생산이 실패한 게 아니라, 아이폰이 더 나은 제품이었고 브랜드 파워도 훨씬 컸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판매가 잘 됐다면 이 실험은 계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애플, 한정판 미국산 아이폰으로 명분 쌓을 수도”
업계에서는 애플이 전면적인 미국 생산보다는 ‘한정판’이나 ‘프레스티지 에디션’ 정도를 미국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요구를 맞추는 ‘절충안’을 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레티클리서치 소속 애널리스트 로스 루빈은 “2000달러(약 279만원)짜리 고급 아이폰을 미국에서 한정 생산하면 애플은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숙련 인력과 부품 공급망 부족, 트럼프가 수시로 바꾸는 관세 정책 등이 미국 내 대규모 스마트폰 생산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