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반도체, G42 통해 중국·러시아 유출 가능성 제기되며 '거래 중단' 압박
백악관-상무부 '수출 속도전' 이견…업계는 정책 불확실성에 혼란
백악관-상무부 '수출 속도전' 이견…업계는 정책 불확실성에 혼란

이번 계약은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기회로 급물살을 탔다. 세계적인 칩 설계 기업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2025년부터 UAE에 공급하고, 현지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이 가운데 약 20%는 아부다비 AI 기업 G42에 돌아가고, 나머지는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같은 미국 대형 기술기업이 현지 데이터센터를 설립해 운영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다. 엔비디아는 큰 규모의 판매를 기대했고, UAE는 AI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경제를 다각화할 핵심 기회로 여겼다. 양측은 빠른 세부 조율을 바랐으나 뜻밖의 안보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 백악관은 '수출 강행', 일부선 '안보 우선'…엇갈린 미국
핵심 쟁점은 '중국 위험'이다. 복수의 협상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미국 관리들은 UAE의 AI 기업 G42 등이 중국·러시아와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통해 엔비디아의 최첨단 기술이 이들 나라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인력의 접근을 막는 등 물리적으로, 또 소프트웨어로 검증할 방안을 요구하며 G42가 직접 칩을 받지 않는 조건 등을 협상하고 있다. 현재 미 상무부는 G42로의 칩 수출 승인을 보류했다.
이러한 미국의 내부 사정은 행정부 안의 이견을 드러내며 혼선을 빚고 있다. 거래 성사에 힘써온 상무부 하워드 러트닉 장관은 공식적으로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무부 대변인은 "러트닉 장관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서명한 거래 이행 계획이 제시간에 예정대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주미 UAE대사 유세프 알 오타이바는 이번 거래가 "양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합의를 주도한 설계자였던 백악관의 데이비드 색스 AI 차르는 늦어지는 상황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피츠버그에서 열린 기술·에너지 정상회의에서 "우리가 기술을 주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 경쟁자들이 할 것"이라며 "칩이 다른 곳으로 새 나갈 것이라는 걱정은 터무니없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역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계약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주저함이 중동 시장을 노리는 중국의 화웨이에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 AI 패권 경쟁의 축소판…'안보 장치' 전제로 타결될 듯
이번 계약 지연은 AI 시대를 둘러싼 미·중 경쟁의 한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I 모델 훈련의 핵심 시설인 데이터센터와 그 심장인 최첨단 반도체는 이제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여겨진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UAE 안 데이터센터 운영사로 거론되는 만큼 이들 기업 역시 칩을 수출하려면 여러 기관의 까다로운 안보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거래가 최종 타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으나 G42 같은 특정 기업에 대한 감독 조건을 두고 치열한 조율이 이어질 전망이다.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시대의 동맹국·우방국을 대상으로 한 차등 규제 정책인 'AI 확산 규정'을 폐지하고 새로운 기준을 마련 중이어서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다. 미국은 최첨단 칩 통제를 동맹과 산업 협력을 넓히는 전략과, 중국을 막는 안보 논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엄격한 감독 체계 도입을 전제로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비슷한 합의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다른 중동 국가로까지 번질 수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