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보건 등 인류 난제 공동 해결…584억 달러 '필라 II'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
ICT·반도체 기술력과 유럽 자본의 만남…한-EU 과학기술 동맹, 새 장을 열다
ICT·반도체 기술력과 유럽 자본의 만남…한-EU 과학기술 동맹, 새 장을 열다

이번 준회원국 가입은 한국의 연구자와 기관들이 유럽의 협력 상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협력하며 기후 변화, 디지털 전환, 공중 보건 같은 인류 공통의 난제를 푸는 데 동참할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복잡하게 얽힌 국제 현안 해결을 위해 공동의 노력과 전문성 공유가 꼭 필요한 시대적 요구에 따른 전략적인 움직임이다.
한국의 공식 준회원국 지위 확보는 국제 연구 협력 확대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핵심은 584억 달러(약 81조3804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필라 II(Pillar II)' 프로그램에 전면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필라 II는 기후변화, 청정 에너지, 디지털 혁신, 보건, 식량안보 등 국경을 초월하는 과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호라이즌 유럽의 핵심 분야다. 한국 연구기관들은 이제 EU와 다른 19개 연합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과제를 직접 이끌고, 대규모 연구 컨소시엄을 꾸리며 직접 자금을 지원받는다.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총 1040억 달러(약 145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프로그램은 EU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녹색·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하며, 유엔(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와도 흐름을 같이한다.
◇ '완전한 파트너'로 격상… 참여 범위, 필라 II 넘어
한국의 호라이즌 유럽 참여는 2025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생긴 과도기 협약에 따라 이미 시작됐다. 그동안 한국 기관들은 필라 II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었으나, 이번 공식 협정 체결로 EU 회원국과 완전히 같은 조건으로 연구 과제를 평가받고 수혜자로 선정되는 '완전한 협력 상대'의 지위를 얻었다.
참여 범위는 필라 II에 그치지 않는다. 기초과학 분야의 '우수 과학(Excellent Science)', 기술사업화 중심의 '혁신적 유럽(Innovative Europe)', 그리고 국제 연구인력 교류를 돕는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액션(MSCA)' 등 다른 핵심 분야에서도 국제 공동연구는 물론 창업·혁신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 다방면에 걸친 연구 상승효과를 낼 전망이다.
한국이 합류하면서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은 모두 19개 나라로 늘었다. 준회원국은 EU 후보국,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처럼 엄격한 연구와 관리 체계 기준을 채운 국가들로 이루어진다. 한국의 합류는 자국의 연구 역량이 세계적 수준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EU와의 지정학적 연대와 세계 연구 공동체 구축에 이바지하는 결과로 평가된다.
◇ 韓 기술력과 EU 자본의 결합…'윈윈' 협력 기대
이번 협정은 청정 기술, 디지털 전환, 보건 연구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공동 혁신의 문을 활짝 열었다. EU로서도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녹색기술, 바이오 등 세계적 수준인 한국의 기술 강점을 유럽 안의 혁신 생태계에 접목하는 전략적 이점을 얻는다.
이번 공식 가입으로 한-EU 사이 협력은 더욱 구체화하고 속도를 낼 전망이다. 두 쪽은 곧 대형 연구컨소시엄 구성, 대표 R&D 사업 공동 추진, 박사와 박사후연구원(포닥) 인력 교류, 유럽-아시아 혁신 경연 대회 개최 등 여러 후속 조치를 통해 협력 관계를 다질 것이다.
이번 협력은 세계 혁신이 더는 어느 한 대륙의 전유물이 아니며, 열린 과학 협력에 투자하는 나라가 미래를 이끈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던진다. 나아가 앞으로 일본, 싱가포르, 중국 같은 다른 아시아 기술 선도국들의 국제 공동 R&D 참여 확대를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더 많은 국제 R&D 자금을 확보하는 실질적인 혜택은 물론, 세계 기술 의제 설정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고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이며 과학기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협력 관계가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지식과 혁신을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 전 세계에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