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 위축·Z세대 이탈…'큰 손'들이 등 돌렸다
가격 대신 '희소성' 가치 부상…업계, 새 디자이너로 돌파구 모색
가격 대신 '희소성' 가치 부상…업계, 새 디자이너로 돌파구 모색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등 7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린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총수는 현재 판매 부진을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한다. 그는 올해 1월 이후 10억 달러(약 1조3784억 원)가 넘는 사재를 투입해 자사주를 사들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의 예측대로라면 주가가 5분의 1가량 하락한 지금이 LVMH 주식의 매수 적기인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유럽 명품주를 담당하는 UBS의 한 분석가는 "2년간 회복세를 기다려온 투자자들이 업계의 장기적인 구조적 매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LVMH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4% 줄었고, 순이익은 22%나 급감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LVMH는 지난주 실적 발표에서, 지난해 그룹 영업이익의 80%를 차지한 핵심 사업부인 패션·가죽 부문의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줄었다고 밝혔다.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부진한 실적에 대해 경영진은 관광객 소비 감소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엔화 약세를 기회 삼아 일본에서 명품을 사던 중국인들의 차익 거래 기회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세계 명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젊은 층의 소비 심리 위축이 수요 감소에 직격탄이 됐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몽클레르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 가격 피로감에 핸드백은 '외면'…가치 소비로 선회
물론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폴렌 같은 신흥 브랜드가 루이비통 같은 거대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을 심각하게 빼앗고 있다는 뚜렷한 자료는 아직 없다.
문제는 소비자 취향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천정부지로 치솟은 핸드백 값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더 나은 가치를 준다고 여기는 품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가격 인상에 소극적이던 주얼리 브랜드들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까르띠에의 모회사 리치몬트는 주얼리 부문의 최근 석 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늘었다고 발표했다. 구찌 같은 브랜드를 떠난 입문 소비자들이 까르띠에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큰 숙제는 젊은 소비자들의 외면이다. 지난해 Z세대의 명품 소비는 7% 줄었으며, 이는 57억 달러(약 7조8568억 원) 규모의 지출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가파른 하락세다. 업계의 비윤리적인 공급망 문제와 기업 윤리에 관한 나쁜 소식, 과도한 가격 인상 논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젊은 세대가 명품에 환멸을 느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탈도 빨라지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명품 브랜드의 소셜미디어 팔로워 증가세가 멈췄으며, 올해 온라인 참여도는 2022년의 40% 수준에 머문다고 지적했다. 레드카펫에 오르는 옛 의상(빈티지)의 증가는 이러한 '분위기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신상품보다 희귀한 단 한 벌의 옷을 갖는 것이 새로운 지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 새 디자이너·제품 다각화로 '위기 돌파' 안간힘
명품 업계가 위기를 맞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소비자들이 로고에 피로감을 느끼자 업계는 루이비통 카퓌신 같은 절제된 디자인을 선보여 성공적으로 위기를 넘겼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광고 예산과 혁신 역량은 여전히 거대 기업들의 강력한 무기다. 샤넬, 구찌, 디올 등 12곳이 넘는 주요 브랜드가 새로운 총괄 디자이너(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앞세워 올 하반기 대대적인 신상품 발표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위기에 맞서고자 가격대가 비교적 낮은 스카프, 벨트, 지갑 등 장신구(액세서리) 제품군을 늘리고 고객 맞춤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다각화에 나섰다.
하지만 현재 명품 산업의 규모는 10년 전보다 50%나 크다. 새로운 디자이너들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더라도, 성숙기에 접어든 브랜드들이 주주들에게 익숙한 가파른 성장 곡선을 다시 그리기란 한층 더 어려워졌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