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즉흥적 결정에 실무 협상 무력화…8월 1일 시한에 쫓겨 '구두 합의'
과거 합의 무시 전례에 '미국 우선주의' 지속 우려…日 '플랜 B' 모색론 부상
과거 합의 무시 전례에 '미국 우선주의' 지속 우려…日 '플랜 B' 모색론 부상

미·일 양국은 지난 22일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문서가 없어, 25일 열린 여야 대표 회담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합의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협상 당사자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상은 "관세 인하가 최우선 과제였기에 합의 문서를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실제로 협상 과정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 미·일 협상 경험이 있는 한 외무성 전직 간부는 아카자와 담당상의 설명에 수긍하며, "이번이 8번째 방미였음에도 협상단 내부에 합의에 이를 것이란 확신은 없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역시 21일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실무 회담을 거친 뒤에야 극히 제한적인 시간에 급작스럽게 결정됐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합의 문서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통상적인 외교 협상에서는 실무진이 사전에 초안을 마련하고, 세율이나 투자액처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부분은 'TBD(추후 결정)'로 남겨둔 뒤 최종 협의를 통해 문서를 완성한다.
◇ '각본' 없는 트럼프식 협상…실무진은 들러리
하지만 이런 관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통하지 않는다. 외무성 전직 간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 사이에는 단절이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협상을 포함한 경제 분야에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서로 경쟁시키는 방식을 선호한다. 실무진이 마련한 협상안보다 자신의 직접적인 판단과 권한 행사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실무 협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누가 더 자신에게 충성하는가" 혹은 "누가 자신을 더 위대한 '딜 메이커'로 포장해주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으며, 실무진이 공들여 만든 초안도 그의 말 한마디에 뒤집히기 일쑤다. 22일 트럼프 대통령과 아카자와 담당상의 협상 역시 "세율과 그 반대급부를 두고 벌인 바나나 떨이 판매와 같았다"는 것이 전직 간부의 평가다. 만약 그 자리에서 문서 작업을 고집했다면, 미국이 상호 관세 25% 인상을 예고한 8월 1일 시한을 넘겼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합의 문서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직언할 관료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트럼프식 협상 스타일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지난 2일 베트남의 또 럼 공산당 서기장과 전화 통화 후 일방적으로 관세 합의를 발표해 베트남 측을 당혹게 한 전례가 있다. 당시 통화에는 협상단조차 배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합의'조차 믿을 수 없다…안갯속 '플랜 B'
이번 합의의 배경에는 양측의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는 15%보다 높은 관세율을 포함한 다양한 안이 논의됐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지난 20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며 이시바 시게루 정권의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는 내부 정치 상황과 관련해 협상 지연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 동력이 약화되기 전 서둘러 자신의 성과로 매듭지으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록 아카자와 담당상의 현장 대응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일 합의를 분기별로 재검토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표할 경우 관세율을 다시 25%로 되돌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2019년 1기 행정부 시절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맺은 미·일 무역 협정조차 사실상 무시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트럼프 스타일' 협상이 갖는 불확실성과 혼란에 대한 우려 또한 여전하다.
일본 측이 시간 압박과 내부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해 문서화보다는 시한 내 합의를 우선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더라도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에, 일본이 서서히 '플랜 B'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사례는 향후 협상 과정의 불확실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