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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일리노이주, 양자 기술에 5억 달러 투자…'제2 인터넷 혁명' 선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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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일리노이주, 양자 기술에 5억 달러 투자…'제2 인터넷 혁명' 선점 나섰다

30년 전 인터넷 붐 놓친 교훈…'기술 주도권' 확보에 사활
프리츠커 남매, 시카고에 연구단지 조성…인플렉션 등 기업 유치 성과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일리노이주는 프리츠커 남매의 주도하에 5억 달러를 투자해 양자 기술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인플렉션 등 관련 기업 유치에 성공하며 '제2의 인터넷 혁명' 선점을 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일리노이주는 프리츠커 남매의 주도하에 5억 달러를 투자해 양자 기술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인플렉션 등 관련 기업 유치에 성공하며 '제2의 인터넷 혁명' 선점을 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일리노이주가 시카고를 중심으로 차세대 '양자 기술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하얏트 호텔 상속인이자 정계의 거물인 J.B. 프리츠커 주지사와 페니 프리츠커 전 상무부 장관 남매가 있다. 이들이 주도하는 주 전체의 양자 컴퓨팅 육성책이 시카고 남부에서 구체화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미래 산업을 선점하려는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프리츠커 남매는 양자 기술이 현대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고 산업 판도를 바꿀 전환점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 기술이 질병의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고 기후 변화의 해법을 찾으며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등 고향인 시카고에 대규모 경제 부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J.B. 프리츠커 주지사는 지난주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양자 토론회'에서 "양자 기술은 세상을 완전히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일리노이주는 시카고 남부의 옛 US스틸 터에 5억 달러(약 6914억 원)를 투자해 '일리노이 양자 및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파크'를 조성하는 등 비전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이곳은 양자 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민간 및 공공 연구소의 집적지가 될 전망이다. 페니 프리츠커 전 장관 역시 2019년 공동 설립한 비영리단체 'P33'을 통해 시카고를 혁신 중심지로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P33은 양자 관련 행사를 후원하고 지역 사회를 위한 기술 교육에 투자하며 생태계 조성의 한 축을 맡는다.

◇ 30년 전 놓친 '인터넷 혁명'…"같은 실수 반복 안 해"

이들의 공격적인 양자 기술 육성책 이면에는 30년 전 놓친 기회에 대한 쓰라린 교훈이 있다. 세계 최초의 그래픽 웹브라우저 '모자이크'와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모두 일리노이 대학교 졸업생이 개발했지만, 당시 주 정부의 무관심 속에 모든 기업과 인재는 실리콘밸리로 떠나갔다. 기술 투자자였던 프리츠커 주지사는 "당시 주 지도부는 그들을 품어야 할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2019년 주지사로 취임했을 때 양자 기술이 떠오를 것을 알았고, 일리노이에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양자 기술은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분야다. 기술 전문가들조차 그 복잡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여서, '국제 양자 토론회'에서는 400여 참석자 모두에게 한 쪽짜리 설명 자료를 나눠줘야 했다. 상업적 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나오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공학 과제들이 남아있어 아직 수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 "AI는 늦었다"…미래 선점 위한 '양자' 택했다


그런데도 프리츠커 남매가 단기 성과가 유망한 인공지능(AI) 대신 양자 기술을 택한 까닭은 '선점'의 기회 때문이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2019년에 AI에 투자했다면 여전히 뒤처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 기술은 우리가 앞서나갈 기회가 아직 남은 분야였다"고 설명했다. AI 분야는 이미 수많은 주와 기업이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하지만, 양자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혁신 생태계를 이끌 기회가 열려있다고 판단했다. 일리노이주는 이미 시카고대, 페르미랩 등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10대 양자 연구 센터 가운데 4곳을 둔 강력한 기반 시설을 갖췄다.

이러한 공격적인 유치 전략은 최근 구체적인 결실을 보았다. 지난주 프리츠커 주지사는 양자 신생기업 '인플렉션(Infleqtion)'이 '사이퀀텀(PsiQuantum)'에 이어 '일리노이 양자 및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파크'에 새로 입주한다고 발표했다. 인플렉션의 맷 킨셀라 최고경영자(CEO)는 프리츠커 주지사를 두고 "그는 양자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플렉션은 초기에 35명 넘게 고용하고 주 정부의 지원책을 더해 모두 5000만 달러(약 691억 원) 규모를 일리노이주에 투자한다.

킨셀라 최고경영자는 프리츠커 남매의 선구안을 높이 샀다. "6년 전쯤으로 돌아보면, 당시로서는 성공이 불투명한 투자였지만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기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정작 현실이 됐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인터넷 시대의 기회를 놓쳤던 일리노이가 프리츠커 가문의 주도 아래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양자 기술로 경제·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세계적 중심지로 거듭나려는 명확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