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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포춘 500'에도 들지 못한 팔란티어, 어떻게 글로벌 기업 반열 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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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포춘 500'에도 들지 못한 팔란티어, 어떻게 글로벌 기업 반열 올랐나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사진=로이터

미국의 방위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팔란티어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상위 기업 반열에 올랐다.

매출 규모로만 보면 경쟁 기업에 한참 못 미치지만 시가총액은 세계 25대 기업 안에 들며 그 격차를 압도했다.

7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팔란티어는 최근 분기에서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억 달러(약 1조3300억 원)를 돌파했으며 주가는 1년 전보다 555% 급등한 160달러(약 21만 원)를 넘어서면서 시가총액이 4090억 달러(약 544조50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존슨앤드존슨, 엑손모빌 바로 뒤인 세계 23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 AI 바람 타고 민간사업 급성장…10년 만에 국방부와 10조원대 계약

팔란티어는 지난 2003년 피터 틸이 공동 창업한 기업으로 창업 초창기부터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부 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방위 분야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왔다. 틸은 글로벌 온라인 결제 플랫폼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출신이다.

팔란티어는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에 힘입어 민간 부문에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상업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93% 증가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2023년 출시한 생성형 AI 플랫폼 ‘AIP’에 기반한 신규 계약이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실적발표에서 “씨티은행이 AIP를 도입한 후 고객확인(KYC) 절차가 9일에서 몇 초로 줄었고 패니매는 주택담보 사기 탐지를 2개월에서 몇 초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카프는 “대형 기업 고객들이 팔란티어를 ‘떠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부 부문에서는 미 육군과 체결한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3000억 원) 규모의 10년 장기 계약이 주목된다. 이는 미 국방부가 체결한 소프트웨어 계약 중 최대 규모로 10년 전 팔란티어가 미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입찰 배제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같은 고객과 맺은 계약이라는 점에서 더욱 상징성이 크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정부 조달 혁신법’이 통과되면 보잉, 록히드마틴, RTX 등 기존 방산기업의 장벽이 낮아지고 팔란티어와 같은 기술 기업들이 더 쉽게 정부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실적 뛰지만 ‘2배 고평가’ 논란…ICE·이스라엘 계약엔 비판도


은행권에서는 “팔란티어는 전통적인 주가지표로 보면 여전히 2배 이상 고평가된 상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리아나 페레스 모라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연간 매출 성장률과 조정 영업이익률을 더한 ‘40의 법칙(Rule of 40)’이 94%에 달한다”며 “수익성과 성장성이 동시에 높다는 점에서 지금의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된다”고 평가했다.

40의 법칙이란 연간 매출 성장률과 조정 영업이익률을 더한 값이 40%를 넘으면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양호한 것으로 간주하는 기준이다.

팔란티어는 수년 전부터 이민세관단속국(ICE) 및 이스라엘 국방군(IDF)과의 계약으로 인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특히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팔란티어가 이스라엘의 예측형 자동 치안 시스템에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팔란티어 측은 “가자지구 공습이나 타격 작전과 관련된 시스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 실리콘밸리도 이제는 ‘국방 테크’ 환영


팔란티어는 창업 초기 구글, 세쿼이아캐피털 등 주요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거절당했으나 피터 틸이 직접 자금을 투입하고 CIA의 벤처펀드 ‘인큐텔’로부터 지원을 받아 성장해왔다. 현재 틸의 측근인 JD 밴스가 미국 부통령직을 맡고 있고 국방기술을 환영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팔란티어는 다시 ‘정권과 가장 가까운 테크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카프 CEO는 최근 발표한 주주 서한에서 “미국은 국제적인 취향을 반영한 타협의 산물이 돼서는 안 된다”며 “가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C.S. 루이스의 1943년 저서를 인용한 것으로, 팔란티어 특유의 ‘철학적 세계관’을 드러낸 대목이란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