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로=174엔, 엔화 가치 추락에 스위스 시계·伊 파스타 값 고공행진
수입 와인 판매 8% 급감…'가격 부담'에 저렴한 국산품으로 수요 이동
수입 와인 판매 8% 급감…'가격 부담'에 저렴한 국산품으로 수요 이동

가격 인상 사례는 여러 분야에 걸친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시계 제조사 스와치 그룹은 주력 브랜드 '오메가'의 일본 내 판매 가격을 지난 8월부터 올렸다. 스위스 프랑에 대한 엔화 가치 하락은 물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운송비 등 여러 비용이 함께 오른 탓이다. '오메가'를 취급하는 한 시계 매장 담당자는 "이번 인상률은 평균 3% 수준"이라며 "엔화 약세와 세계적인 물가 상승 추세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 판매 가격이 내려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흐름은 식탁 물가까지 덮쳤다. 식품 기업 닛신제분 웰나는 지난 7월 1일부터 이탈리아산 파스타 '디체코'를 포함한 제품 가격을 6~17% 올렸다. 도쿄 네리마구의 한 마트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이탈리아 파스타는 고급스럽고 맛있지만, 여기서 더 오르면 더 저렴한 상품을 살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벨기에 초콜릿 '피에르 마르콜리니' 역시 원료인 카카오 흉작까지 겹치며 지난 4월 판매 가격을 평균 9.6% 올렸다.
◇ 끝없는 엔저…달러 약세 속 유로·프랑으로 쏠리는 돈
가장 큰 원인은 가파른 엔화 약세다. 미쓰비시 UFJ 은행이 8월 5일 고시한 환율을 보면, 1유로당 엔화는 174엔 안팎에서 거래됐다. 시장 전반에서도 1유로에 170엔 중반에서 173엔대를 기록하며 2024년의 최저치(175엔)에 근접했다. 7월 말부터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에 엔화 가치가 유로에 견줘 6%나 하락한 셈이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도 엔화는 7월에 1프랑에 186엔대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외환 시장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준비제도(FRB)에 대한 금리 인하 압력으로 달러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탈달러'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자금은 안전자산인 스위스 프랑과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출에 따른 경기 부양 기대감이 커진 유로화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반면 일본은 무역 적자 등 고질적인 문제로 엔화 매도 압력이 계속되면서 유럽 통화에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니 파이낸셜 그룹 모리모토 준타로 선임 분석가는 "앞으로 1유로에 175엔을 넘어 유로 강세, 엔저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 비싸진 수입품에 '지갑 닫기'…국산 와인 찾는 소비자
수입 기업들은 환헤지나 유통 구조 간소화 등으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려 애쓰고 있지만, 충격을 모두 떠안기는 어려워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넘기고 있다. 실질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기린 홀딩스 산하 메르샹, 아사히맥주 계열의 에노테카 등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산 와인 가격을 올리자 판매는 바로 부진에 빠졌다.
닛케이 판매시점정보(POS) 자료는 이런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지난 7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산 수입 와인의 평균 판매 가격은 979엔으로, 전체 와인 평균 가격 709엔을 크게 웃돌았다. 유럽산 와인의 방문객 1000명당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 줄었다. 국산품을 포함한 전체 와인 판매액이 4% 줄어든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유럽산의 판매 부진이 뚜렷하다.
다이이치 생명 경제연구소 구마노 히데오 수석 경제분석가는 이런 흐름을 명확히 짚었다. 그는 "유로 강세로 환율 변동에 따른 비용이 상품 가격에 더해지면, 더 저렴한 국산품을 선호하는 흐름이 한층 강해질 것"이라며 "아예 유럽산을 구매하지 않는 흐름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가 불러온 수입품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소비 구조의 변화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