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경제통계 사령탑인 에리카 맥엔타퍼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 국장을 해임한 것을 두고 아르헨티나에서의 경제통계 조작 사례와 유사한 위험이 제기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고용통계 하향 수정 직후 BLS가 공화당에 불리하게 수치를 조작했다고 주장했으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당파에 얽히지 않은 경제학자들도 이를 일축했다.
국제 거시경제 전문가로 유명한 필 서틀 경제학자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이는 최악의 신흥국에서 최악의 포퓰리스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2007년 아르헨티나 ‘통계 조작’ 전례
후임으로 임명된 친정부 인사는 2006년 9.8%였던 공식 물가상승률을 2007년 8.5%로 낮췄다. 그러나 민간 추정치는 약 25%에 달했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물가연동 채권 이자 지급액을 줄여 수십억 달러를 아꼈다. 이로 인해 연금 수급자와 노조의 소송이 잇따랐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알베르토 카발로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민간 물가 추적 웹사이트를 개설해 공백을 메웠다.
여기서 공백이란 아르헨티나 정부가 2007년부터 물가상승률을 의도적으로 낮게 발표하자 공식 통계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확한 물가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정보 공백’이 생긴 상황을 말한다. 카발로 교수는 “이런 통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례가 쌓이며 알게 된다”고 말했다.
◇ 미국 경제통계 신뢰성 우려
미국에서 BLS와 같은 독립 기관이 생산하는 경제통계는 세금, 연금, 투자수익뿐 아니라 약 120조 달러(약 15경8400조 원) 규모의 주식·채권시장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뒷받침한다.
윌리엄 비치 전 BLS 국장은 “이번 인선은 BLS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며 “정직성과 청렴성에 의심 여지가 없는 인사가 만장일치로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렌트 몰튼 전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 부국장은 “공식적으로 수집되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직접 측정이 없으면 사실상 중세 암흑기 같은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는 아르헨티나도 당시 강력한 법적 보호 장치와 인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정치권 개입으로 오랜 기간 신뢰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