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배제된 우크라이나 전쟁 협상…"러시아 일방 승리" 우려

백악관과 크렘린궁은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가 지난 8일 크렘린궁에서 푸틴을 방문한 뒤 이번 회담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 재선 뒤 두 정상이 처음 만나는 자리로, 2019년 일본 오사카 회담 이후 6년 만의 만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집무실로 돌아가기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휴전을 "24시간 이내에" 중재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범죄 혐의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수배 중이지만 미국은 ICC 회원국이 아니어서 그를 체포할 의무는 없다.
◇ 젤렌스키 "돈바스 양도는 러시아 재침략 발판"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2일 키예프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돈바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군에게 돈바스는 앞으로 새로운 공세를 위한 발판"이라고 강조했다고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 우리가 요새에서, 구호에서, 우리가 통제하고 있는 고지에서 돈바스를 떠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러시아의 공세를 준비하기 위한 교두보를 열게 될 것"이라며 "몇 년 안에 푸틴은 자포리자와 드니프로 지역 모두로 가는 열린 길을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평화 합의를 위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이 "토지 교환"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문제는 안보 보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영토 교환을 부동산 거래"라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편 푸틴 대통령이 알래스카 회담을 앞두고도 "새로운 공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3일 텔레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러시아가 전후 상황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받았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며 "오히려 그들은 새로운 공격 작전을 위한 준비를 암시하는 방식으로 군대와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동부의 중요한 방어 도시인 포크로프스크 북쪽 전선 지역을 뚫고 도브로필리아 마을을 향해 최소 6마일(약 9.6km) 진격한 상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한 오는 14일 트럼프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과 유럽 동맹국들과의 화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미국 관리들이 ABC뉴스에 확인했다.
◇ 러시아 경제 악화와 전선 교착이 푸틴 협상 동기
러시아 정치학자이자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방문학자인 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는 알자지라에 "푸틴 쪽에서 이것은 그가 미국 영토에 와서 존경의 표시를 보이는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상징적인 승리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이번 회담을 놓고 기대와 회의론이 엇갈리고 있다. 모스크바 주민 다미르 구린은 "관계 재개를 위한 신호일 수 있다"며 "공식적으로 워싱턴은 제재와 제한을 한 번에 해제할 수 있는 모든 법률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어 세기의 거래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연금수급자 캐서린은 "푸틴의 노쇠한 고집과 트럼프의 즉흥성 사이에서 모든 것은 여전히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정치 분석가 키릴 로고프는 DW에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모색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로고프는 러시아 경제 악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진격 부진, 러시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미국의 2차 제재를 꼽았다.
로고프는 "푸틴은 또한 현재 자신의 승인을 위해 가능한 가장 높은 가격을 이끌어내기를 바란다"며 "올해 말까지 러시아의 공세가 거의 효과가 없고 전장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면 푸틴은 더욱 나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폭격에 대해 푸틴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면서 러시아가 50일 이내에 전투를 중단하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으나 그 기한은 이미 지났다. 지난달 31일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수도에서 최악의 전시 공격 중 하나로 수십 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새로운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한 인도를 처벌하기 위해 지난주 인도에 50%의 관세가 부과됐다.
블룸버그는 지난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크렘린궁이 스티브 위트코프의 러시아 방문이 트럼프와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크렘린궁이 이제 양보를 통해 영공 휴전을 제안할 수 있다고 전했다.
◇ 회담 성과 전망과 앞으로 협상 과제
러시아로 망명한 야당 정치인 드미트리 구드코프는 DW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이 트럼프를 만날 기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미 큰 플러스"라며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전범을 합법화하고 푸틴이 서방과의 협상에 참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의 요구사항 중에는 우크라이나가 남부와 동부의 여러 지역을 양도하고, 군대의 규모와 정교함에 제한을 받아들이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영구히 배제되는 것이 있다. 푸틴은 또한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러시아에 대한 모든 국제 제재가 해제되기를 원한다고 ABC뉴스가 전했다.
공식적으로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조건을 따른다면 우크라이나군은 여전히 통제 아래 있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에서 물러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다가오는 정상회담을 "느낌 있는 회의"라고 표현하며 기자들에게 "나는 블라디미르와 대화하기 위해 들어갈 것이고 그에게 '당신은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끝내야 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회담이 끝나면 아마도 처음 2분 안에 협상이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를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