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이 연방정부의 직접 투자를 받는 방안을 논의 중인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단기적으로 주가에는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트럼프-인텔 CEO 회동…정부 지분투자 논의
16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인텔의 립부탄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연방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 방안을 논의했다. WSJ는 이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라고 전했지만 불과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이 립부탄 CEO의 해임을 요구한 상황에서 나온 급격한 분위기 반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같은 보도가 나온 뒤 14일 인텔 주가는 7% 급등했고, 15일 오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인텔은 지난 3년간 대만의 TSMC에 빼앗긴 제조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약 400억 달러(약 54조 원)를 투입했지만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고 시가총액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 단기 ‘구원투수’ 가능…장기 ‘통제 위험’ 커
WSJ는 정부의 직접 개입이 인텔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텔은 ‘18A’로 불리는 최첨단 공정을 통해 TSMC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최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이 기술을 외부 고객이 아닌 인텔 자체 제품에 주로 쓸 것”이라고 밝혀 수탁생산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실제 월가에서는 인텔이 올해에도 70억 달러(약 9조5000억 원) 규모의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탄 인텔 CEO는 실적 발표 당시 “차기 공정인 ‘14A’에는 외부 고객사의 수요가 확보되기 전까지 자본 지출을 보류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 지속 여부를 고객 수주 여부에 걸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자립 전략과도 충돌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업체는 인텔이 사실상 유일하며 애플과 엔비디아 등 TSMC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국 기술기업들은 중국과의 갈등 고조 시 심각한 공급 차질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 정부 개입, 시장 왜곡 가능성
WSJ는 “정부가 인텔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향후 정권이 민간기업의 경영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통제권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일주일 사이 립부탄 CEO의 사임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엔비디아와 AMD에 대해 “중국에 AI 칩을 판매하는 수익의 15%를 정부에 넘기라”고 압박해 실현시킨 바 있다.
이런 사례들이 반복될 경우 향후 정부가 수출 허가를 명분으로 엔비디아나 AMD, 퀄컴 같은 칩 설계 기업들에게 인텔과의 생산 계약을 강제할 수 있고 이는 제품 품질과 산업 효율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WSJ는 “TSMC보다 낮은 수율과 생산능력을 가진 인텔 공장에서 칩을 생산하도록 압박할 경우 미국 전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이는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한 정부 개입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인텔, 이미 ‘정부 의존 기업’ 전환 중
조 바이든 전 행정부도 인텔을 미국 내 생산기지로 중시해 왔으며 2022년 오하이오 반도체 공장 착공식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인텔은 지금까지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최대 80억 달러(약 10조8000억 원)의 직접 자금을 지원받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인텔의 조직개편이나 시설 활용 계획에 대해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조건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정부가 지원을 넘어 직접 지분을 소유하는 단계로 진입할 경우 미국 기술산업의 근간이었던 ‘시장 주도 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