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28명 "동아시아계 편애, 안전 문제 묵살" 주장
회사 "소송은 날조된 이야기" 반박…거액 투자 속 문화 충돌 양상
회사 "소송은 날조된 이야기" 반박…거액 투자 속 문화 충돌 양상

소장에 따르면, TSMC는 동아시아계 직원을 우대하는 반면 미국인 직원들에게는 "멍청하다", "게으르다" 같은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또한 "비동아시아계 직원들을 언어폭력, 가스라이팅, 고립, 굴욕이 만연한 일하기 힘든 분위기에 일상적으로 노출시켰다"고 썼다. 원고 측 변호사는 "TSMC가 고용, 승진, 해고 등에서 의도적으로 차별 관행을 이어왔다"며 '패턴 혹은 관행상' 차별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은 1964년 민권법 제7장(Title VII)과 1866년 민권법(42 U.S.C. §§ 1981)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 "안전 제언은 무시, 문제 제기자는 문제아 취급"
이번 소송에는 현장에서 나온 안전 문제가 묵살됐다는 주장도 담겼다. 2022년 노스피닉스 공장에 입사했던 소방 안전 전문가 데이비드 아미리는 "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아주 간단히 말해, 미국인 직원들은 소외됐다"고 증언했다.
TSMC 인사팀에서 일했던 미셸 버나도는 나이 많은 미국인 직원과 여성을 기피하는 차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회사가 채용 담당자들에게 "젊은 인재"를 찾아오도록 기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버나도는 공정한 대우를 위해 사내에서 자주 목소리를 냈지만 "마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했다"고 말했다.
◇ 투자 이면의 그림자…건설부터 불거진 '차별' 논란
이번 소송은 공장 건설 단계부터 불거진 고용 차별 논란의 연장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TSMC가 공장 건설 때 동아시아계 인력을 집중 채용하려다 지역 노동조합의 반발에 부딪혀 일부 현지 채용으로 바꿨다는 주장이 과거 제기된 바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TSMC 북미 법인 직원 약 2668명 가운데 대다수는 대만·중국 출신이며, 상당수가 미국 취업 비자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과거 TSMC의 모리스 창 전 회장이 문화 차이를 이유로 인력 다양성에 한계를 두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회사의 조직 문화가 미국 내 다양성 정책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TSMC는 법원에 낸 서류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TSMC 변호인단은 160쪽 분량의 소장이 "면밀한 근거 없이 쓴 자극적이고 허위인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회사는 공식 성명을 내고 "애리조나 시설의 성공을 위해 3000명이 넘는 국제 팀이 함께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모든 근무자에게 안전하고 모두를 포용하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8월 원고 한 명으로 시작됐으나 현재 28명까지 늘었고, 앞으로 집단 소송으로 커질 가능성도 있다. 양측 변호인단은 현재 각자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모으는 '증거 조사(discovery)'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TSMC는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확장 계획을 발표하며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의 핵심 기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기업의 성공적인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해 기업 윤리와 다양성·포용 정책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경영 과제인지를 뚜렷이 시사한다. 국제 반도체 공급망과 현지 고용 정책, 다문화 조직 관리의 복합 과제를 상징하는 이번 사건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