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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일대일로' 12년, '세계적 야망'에서 '위험 관리'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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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일대일로' 12년, '세계적 야망'에서 '위험 관리'로 선회

개발도상국 부채 문제·참여국 이탈에 '속도 조절' 불가피
초대형 사업 대신 '작지만 아름다운' 프로젝트로…'디지털 실크로드' 확장 모색
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현대판 실크로드’를 내세우며 2013년 야심 차게 시작한 ‘일대일로’ 구상이 12년 만에 중대 기로에 섰다. 세계 곳곳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며 영향력 확대를 꾀했지만, 참여국들의 부채 문제와 잇따른 이탈로 '성장의 길'이 아닌 '부채의 덫'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29일(현지시각) 진단했다. 거듭된 실패와 비판 속에 중국의 핵심 대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 '묻지마 투자'에서 '선별적 협력'으로


일대일로는 중국의 경제·지정학적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는 핵심 전략이었다. 도로, 철도, 항만 등 기반 시설 건설을 통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를 잇는 거대한 경제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에 150여 개국이 동참했다. 푸단대학교 녹색금융개발센터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일대일로를 통해 집행된 누적 자금은 1조3080억 달러(약 1817조 원)에 이른다. 이 중 건설 계약이 7750억 달러(약 1077조 원), 직접 투자가 5330억 달러(약 740조 원) 규모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통치 체제가 취약한 저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감당 불가능한 빚을 떠안긴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일라리아 마조코 부소장은 "일대일로는 통치 문제가 있는 국가에서 매우 위험성이 높은 프로젝트들로 특징지어졌다"며 "이는 많은 부채와 문제를 야기했고, 중국 기업들이 항상 약속을 이행한 것도 아니어서 중국 정부는 정치 문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안팎에서 경제 성장세가 꺾이고 반발에 부딪히자, 중국은 전략 수정을 택했다. 요란하고 위신을 앞세운 대규모 프로젝트 대신, '규모보다 질'이라는 새로운 구호 아래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높고 안정적인 국가에서 사업을 선별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최근에는 환경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 빛과 그림자…성공과 실패의 교차


일대일로의 균열은 참여국의 이탈로 가시화했다.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참여했던 이탈리아는 2023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유럽연합(EU) 및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중국과의 교역 및 투자 증가 효과가 미미했다고 밝혔다. 중남미 첫 참여국이었던 파나마 역시 미국의 압박과 파나마 운하의 전략상 중요성에 대한 우려 속에서 2025년 협정 연장을 포기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2021년 개통한 중국-라오스 철도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총연장 1035km, 사업비 59억 달러(약 8조 1900억 원)로 라오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이르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관광과 무역을 활성화하며 주변국인 태국, 싱가포르와의 연결 기반을 마련했다. 우간다 음발레 산업단지처럼 현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사례도 있다.

반면 스리랑카는 함반토타 항구 건설로 막대한 빚을 진 끝에 중국에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겨주며 '부채 함정'의 대표 사례가 됐다. 중국 국영기업 시노하이드로가 에콰도르에 건설한 코카 코도 싱클레어 수력발전 댐 역시 부실시공과 부패, 환경 파괴 논란에 휩싸이며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일대일로는 2010년대 '중국의 세계적 야망의 상징'에서 2020년대 '위험 관리형 맞춤 프로젝트'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서방의 비판에도, 마땅한 대안이 없는 개발도상국들은 여전히 일대일로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여긴다. 윌슨 센터의 마크 A. 그린 명예회장은 "일대일로를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개발도상국들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대일로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일대일로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실크로드' 형태로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