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불확실성·인플레이션 우려 속 금 ‘궁극의 안전자산’ 재조명

4일(현지시각) CNBC에 따르면 지난 며칠간 주요국 국채 금리와 금값이 동시에 급등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금리 상승은 무수익 자산인 금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지만, 이번에는 달러 및 주요국 재정·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금으로 몰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의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번 주 한때 5%를 돌파하며 지난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도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올해 들어 100bp(1%포인트) 넘게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과 마이너스 실질금리 및 정치 불안이 겹친 결과다.
유럽의 사정도 좋지 않다. 영국의 30년물 국채(길트) 금리는 이번 주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프랑스는 재정정책 불확실성으로 30년물 국채 위험 프리미엄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그동안 안전자산 수요가 꾸준했던 독일 국채(분트) 30년물 금리도 14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채권 가격과 수익률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금값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전날 거래에서 현물 가격이 온스당 3578.5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CNBC에 “일본, 프랑스, 영국에서 재정적자 확대와 잠재적 부채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점점 더 많은 투자자가 금융 불안정에 대비해 금을 안전자산으로 편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 금리가 상승하면 매력이 떨어지지만, 최근에는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통화정책의 정치화가 금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질랜드 와이카토대 마이클 라이언 회계·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가장 큰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독립성 개입”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면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이 좌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리사 쿡 연준 이사를 모기지 사기 대출 의혹을 이유로 해임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고, 제롬 파월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라이언은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새로운 위험으로 부상했고, 금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야데니 대표는 “채권 시장의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각국의 재정·통화정책에 불만을 표출하며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점점 더 많은 투자자가 국채에서 금으로 갈아타고 있으며 현재 모멘텀은 금에 있고, 채권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더 안전한 피난처
투자자들 사이에서 미국 달러화의 안전자산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도 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막대한 정부 부채, 고조되는 지정학적 긴장 및 중앙은행 독립성 약화 가능성 등이 달러와 주요 통화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미즈호은행의 비슈누 바라탄 경제·전략 부문장은 “투자자들이 달러 기반의 법정통화 체계가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금을 ‘궁극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CNBC는 “높아진 국채 금리가 ‘얼마나 더 올라야 장기 채권 매수세가 유입될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즈호의 바라탄은 “연준이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강화된다면,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를 ‘고정(lock-in)’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지속 불가능한 부채 구조, 지정학적 격변, 달러 기반 통화체계의 약화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장기물보다 단기물 국채를 계속 선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수석 전략가는 “금리가 점진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는 채권 매수세가 붙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프랑스나 일본에서처럼 재정적자 확대와 국채 소화 능력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수요가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