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증시에서 국채금리가 폭발하고 있다. 내각 불신임에 따른 정부 붕괴에 뉴욕증시에서는 "유럽발 금융위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정부의 붕괴 여파가 금융 시장에도 미쳤다.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이탈리아와 동일한 수준까지 올랐다. 프랑스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유럽의 재정 불량국으로 평가된 이탈리아만큼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탈리아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38%로 프랑스(114%)보다 높지만 재정적자는 GDP 대비 3.5% 수준으로 프랑스보다 양호하다. 프랑스 국채에 대해 이처럼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건 투자자들이 현재 프랑스의 정치적 마비 상태, 특히 공공 재정 악화라는 만성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바이루 정부는 프랑스의 공공부채가 지난해 기준 3조3천억 유로(약 5천200조원)를 넘어서자 지난 7월 15일 440억 유로(약 66조원)의 예산 절감과 세수 증대를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 지침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올해 재정 적자를 GDP 대비 5.4%, 2029년 유럽연합(EU) 권고 기준인 3% 이하로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의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출범 9개월 만에 총사퇴하게 됐다. 프랑스 하원은 바이루 정부에 대한 신임 투표에서 신임 194표, 불신임 364표로 불신임을 결정했다. 범여권에 해당하는 중도와 일부 우파 진영을 제외한 좌우 야당 표 대부분이 불신임에 쏠렸다. 1958년 수립된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정부가 스스로 요청한 신임 투표에서 패배해 붕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프랑스 헌법상 내각은 하원 재적 의원 과반수의 불신임을 받으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 직전 미셸 바르니에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에 단명했고 바이루 정부 역시 1년을 채우지 못하게 됐다.
바이루 총리는 이날 신임 투표에 앞선 정견 발표에서도 의원들에게 “여러분에게 정부를 전복시킬 권한이 있지만 현실을 지울 권한은 없다. 현실은 냉혹하게 지속될 것”이라며 “지출은 더욱 증가할 것이며,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부채 부담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신임을 받는 데 실패했다.프랑스의 극심한 정치 혼란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유럽의회 선거 참패 직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렀다. 극우 세력 부상과 정면 돌파해 정치적 신임을 얻으려고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연합, 극우 국민연합(RN),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 등 서로 타협하기 어려운 세 개의 정치 세력이 의회를 분점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어떤 법안도 의회 문턱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집권당의 의회 과반 확보 실패는 잦은 총리 교체로 이어졌다. 이번 불신임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2년 새 다섯 번째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23년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 이후 가브리엘 아탈,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이루까지 모두 예산·재정정책 갈등으로 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