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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글로벌 제약사, 트럼프 관세 위협에 3500억 달러 미국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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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글로벌 제약사, 트럼프 관세 위협에 3500억 달러 미국 투자

GSK·릴리 등 투자 발표 봇물…최대 250% 관세 '폭탄' 피하기
올해만 10여 곳 동참…생산기지 이전으로 수익성 하락 방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약 부문에 최대 250%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자, GSK와 일라이 릴리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내 생산 시설 확충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는 관세 폭탄을 피하고 수익성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약 부문에 최대 250%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자, GSK와 일라이 릴리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내 생산 시설 확충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는 관세 폭탄을 피하고 수익성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이 현실화하자 GSK와 일라이 릴리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미국 본토를 향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수입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에 맞서 미국 내 생산시설을 넓혀 충격을 완화하려는 포석이다. 올해 제약업계가 발표한 대미 투자 약속 규모는 총 3500억 달러(약 483조 원)를 웃돌았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의 GSK와 미국의 일라이 릴리는 나란히 미국 내 신규 제조 공장 건설과 사업 확장 계획을 공개했다. 올해 들어 10개가 넘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 같은 대규모 투자 행렬에 동참했다. WSJ 집계 결과, 이들 기업이 2030년까지 미국 내 제조, 연구개발(R&D), 다른 사업 부문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은 총 3500억 달러(약 483조 원)에 이른다.

GSK는 앞으로 5년간 연구개발과 공급망 기반시설에 300억 달러(약 41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GSK의 엠마 윌슬리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뷰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우리 제품의 대다수는 이미 미국에서 생산된다"며 "이번 투자는 기존 생산 능력에 더해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GSK의 투자 계획에는 필라델피아 외곽에 12억 달러(약 1조 6562억 원)를 들여 호흡기 질환과 항암제 공장을 새로 짓고, 기존 5개 미국 공장의 기술을 개선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윌슬리 CEO는 이번 계획이 "미국 무역 정책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자,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투자를 바꾸는 장기적인 변화의 일부"라고 덧붙였다.

일라이 릴리 역시 50억 달러(약 6조 9010억 원)를 투입해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서쪽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이 공장에서는 단일클론 항체와 항체-약물 접합체(ADC) 같은 복잡한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릴리는 공장 운영에 약 650명을 신규 고용하고, 건설 과정에는 18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투자는 릴리가 지난 2월 발표한 270억 달러(약 37조 2654억 원) 규모 신규 자본 지출 계획의 일부로, 미국 내 4개의 신규 제조 시설 건립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릴리의 데이비드 A. 릭스 CEO는 "버지니아 투자는 미국 혁신과 제조업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사회를 강화하며, 미국인 전체의 건강과 복지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외에도 존슨앤드존슨은 앞으로 4년간 제조, 연구, 기술 분야에 550억 달러(약 75조 9110억 원)를,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는 2030년까지 새로운 제조와 연구 역량 확충에 500억 달러(약 69조 1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최대 250% 관세 압박…'탈출구'는 미국 현지 생산


제약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제까지 각국 정부는 의약품을 필수재라는 이유로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제약 부문에 특화한 관세를 물리려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약 18개월에 걸쳐 관세율을 최대 250%까지 올릴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제약업계는 의약품을 관세 대상에서 빼달라고 설득하는 한편,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양면' 전략을 쓴다. 업계는 관세 대신 조세 정책으로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무역 협정에 따라 미국이 제약 부문 관세 조사를 마치면,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유명 브랜드 의약품에는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업계는 신규 공장 건설과 규제 당국 승인에 통상 5년가량 걸린다는 점을 들어 행정부가 제시한 18개월의 유예 기간이 비현실적이라는 태도다.

공급망 재편·수익 방어 '두 마리 토끼'…유럽계는 더 취약

물론 모든 투자가 관세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경험했던 국경 간 공급망 붕괴를 막으려고 이미 계획했다. 또한 발표된 투자액은 R&D나 정기 자본 지출 등 비제조 부문도 포함한다.

단기적으로 관세 충격에 대비해 인기 비만 치료제 등을 포함한 일부 의약품의 핵심 원료를 미국 안에 비축하는 등 비상 계획을 가동하는 기업도 있다.

시장 분석가들은 장기적으로 대형 제약사들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옮겨 수익성 하락을 상당 부분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정보업체 모닝스타는 제약사들이 미국으로 일부 생산을 이전하면 이익 감소율이 4%에 그치지만, 이전하지 않으면 7%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 내 생산 기반이 상대적으로 작은 유럽계 제약사들이 관세에 더 취약할 수 있으나, 이들 역시 최근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