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폰스틸 인수 조건 '황금주' 첫 발동…공장 폐쇄·해외이전 막는 '안보 거부권'
800명 일자리 지켰지만 '과도한 경영 개입' 논란…전략산업 통제 강화 신호탄
800명 일자리 지켰지만 '과도한 경영 개입' 논란…전략산업 통제 강화 신호탄

지난 1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US스틸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올 11월로 예정했던 일리노이주 그래나이트 시티 공장의 가동 중단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불과 2주 전 공장 근로자 약 800명에게 생산 중단을 통보했으나, 이번 발표로 기존 결정을 완전히 뒤집었다. US스틸은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그래나이트 시티에서 슬래브 소비를 계속할 해결책을 찾아 기쁘다"고 설명했다.
결정 번복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다.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US스틸의 계획을 보고받은 직후 데이브 버릿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화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 통화에서 행정부가 공장 가동 중단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면 대통령이 '황금주' 권한을 발동하겠다고 명확히 전달했다. 그는 최근 CNBC 인터뷰에서도 "가동도 않는 공장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겠다는 US스틸의 계획은 터무니없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황금주', 국가안보 내세운 대통령의 거부권
행정부 개입의 법적 근거인 '황금주'는 정부가 민간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권리로, 주로 국유자산 민영화 과정에서 활용됐다. 미국 정부는 지난 6월 닛폰스틸의 141억 달러(약 19조 7259억 원) 규모 US스틸 인수를 승인하며 이 권한을 조건으로 요구했다. 협약에 따라 공장 폐쇄, 해외 생산 이전, 기업명과 본사 이전, 대형 투자계획 변경 등 주요 의사결정은 대통령의 서면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권한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 개인이 갖지만, 다음 행정부에서는 재무부와 상무부가 행사한다.
이러한 정부 개입은 US스틸뿐 아니라 인텔, 엔비디아 등 다른 전략 산업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칩스법에 따라 막대한 보조금을 받은 인텔의 지분 10%를 정부가 인수하겠다고 밝혔고, 엔비디아와 AMD 역시 중국에 판매하는 AI 반도체 매출의 일부를 행정부에 내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미국 내 외국 기업의 인수나 전략 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권 확대의 본보기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철강 부흥' 상징…노조 "우려가 현실로"
그래나이트 시티 공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시절부터 미국 철강 산업 부흥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한 곳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철강에 고율 관세를 물리자 철강 가격이 급등했고, US스틸은 저가 공세에 밀려 2년 넘게 멈췄던 이 공장의 용광로 2기를 재가동하며 해고 노동자 수백 명을 복직시킨 바 있다.
하지만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이 공장은 최근 몇 년간 생산량이 점차 줄었다. 한 해 약 300만 톤의 판재 생산 능력을 갖췄음에도, US스틸은 2023년 말 이곳에서 철강 생산을 공식 중단했다. 대신 남쪽으로 약 402km 떨어진 아칸소주에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빅리버 스틸 공장의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물량을 대체했다. 현재 그래나이트 시티 공장은 다른 공장에서 만든 강판 슬래브를 받아 판재로 가공하는 압연 작업만 한다.
전미철강노조(USW)는 행정부의 개입을 '약속 이행'으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이번 조치로 노동자 약 800명은 일자리를 지켰다. USW의 마이크 밀샙 지역 책임자는 "그들은 시설을 완전 가동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닛폰스틸 인수를 두려워했던 점"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그동안 닛폰스틸이 약속과 달리 미국 내 공장을 닫고 자사의 다른 해외 공장에서 만든 철강을 수입할 수 있다며 인수를 강력히 반대했다. 닛폰스틸은 인수 계약에 따라 2035년까지 US스틸의 미국 내 모든 공장을, 그래나이트 시티 공장은 2027년까지 운영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다만 공장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US스틸은 2022년 이 공장의 용광로를 일리노이 소재 선코크 에너지에 팔기로 합의했지만, 노조 반대 등으로 3년 넘게 거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선코크 에너지의 한 대변인은 "US스틸과 논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USW 1899 지부의 크레이그 맥키 지부장은 "우리에게는 미래가 필요하다"며 "회사가 어떤 일을 주든 기꺼이 일할 것"이라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