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50개 이상 상장, 첫날 평균 수익률 26%…AI·핀테크 대어급 줄줄이 대기
적자 기업 성과 부진 뚜렷…전문가들 "초기 과열 경계, 펀더멘털 분석" 조언
적자 기업 성과 부진 뚜렷…전문가들 "초기 과열 경계, 펀더멘털 분석" 조언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새내기 주식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도, 일부 기업이 상장 첫날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묻지마 투자' 관행에 경고등이 켜졌다. 화려한 데뷔 이면에 도사린 위험을 점검하고, 옥석을 가려낼 투자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스포츠 경기 티켓 중개 플랫폼 스텁허브 홀딩스의 사례는 현재 IPO 시장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스텁허브는 공모가 23.50달러로 야심 차게 증시에 입성했지만, 거래 첫날 6% 하락 마감하며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스텁허브의 부진은 수많은 기업이 부풀려진 몸값과 불안정한 재무 전망을 안고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IPO 시장의 귀환…숫자로 본 열기
금융정보업체 르네상스 캐피털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150곳이 넘는 기업이 IPO를 통해 증시에 데뷔했다. 이들 기업이 조달한 자금 규모 역시 지난해 240억 달러(약 33조 5760억 원)에서 285억 달러(약 39조 8715억 원)로 증가했다. 미국 증시만 해도 상반기 109건의 IPO가 이루어져 2021년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특히 비미국계 기업의 상장 비중이 62%에 이르러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상장 첫날 평균 주가 상승률은 26%로, 202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증명한다.
이러한 열기는 AI, 암호화폐는 물론 소형 원자로와 같은 첨단 기술 기업들까지 가세하며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르네상스 캐피털은 연말까지 40~60개 기업이 추가로 상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터 스토리지 기업 와사비 테크놀로지스의 마이클 바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IPO 시장에 낙관론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AI 테마를 넘어선 폭넓은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상장한 일부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서클 인터넷 그룹, 피그마, 뉴스맥스 등은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82%에서 최대 735%까지 폭등하며 'IPO 대박'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선구매 후결제' 서비스 기업 클라나 그룹 역시 30% 이상 급등했고, 석유·가스 산업에 수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워터브리지 인프라스트럭처도 15% 가까이 오르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반면 화려한 성공 뒤에는 그늘도 짙다. 스텁허브를 비롯해 윙클보스 형제가 이끄는 암호화폐 자산운용사 제미니 스페이스 스테이션은 공모가를 밑돌고 있으며, 첫날 주가가 두 배 가까이 뛰었던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공모가 수준으로 돌아왔다.
초기 물량 확보 전쟁…변동성은 피할 수 없는 숙명
성공과 실패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장 큰 까닭은 베일에 싸인 가격 책정 방식과 IPO 시장 고유의 변동성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배정 물량은 대부분 기관 투자자나 고액 자산가에게 돌아가고, 일반 투자자는 상장 후 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리서치 회사 IPOX 슈스터의 조세프 슈스터 최고경영자(CEO)는 "초기 물량 배정은 사실상 헤지펀드들의 무대"라며 "시장이 과열된 뒤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유망 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상장 초기 변동성은 IPO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업들은 통상 전체 지분의 15~20% 소량만 시장에 내놓기 때문에 수급에 따라 주가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여기에 상장 후 180일가량 이어지는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면 초기 투자자들의 매물이 쏟아져 나오며 주가 하락을 부추기기도 한다. AI 기업 코어위브는 상장 초기 공모가를 밑돌았으나, 이후 AI 산업의 성장세에 힘입어 주가가 공모가의 세 배 수준까지 치솟으며 극심한 변동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신규 상장 기술주들의 높은 몸값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요인이다. 서클은 추정 순이익의 130배, 피그마는 184배에 거래되는 등 극단적인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분석기관 트리배리에이트의 애덤 파커 창업자는 "결국 수익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적자 기업이 흑자 기업보다 성과가 현저히 저조하며, 보호예수 기간이 있는 IPO 역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장기적으로 부진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성공한 IPO 투자의 조건으로 흑자 재무구조, 대주주 지분율 50% 이상, 비교적 짧은 보호예수 기간 등을 꼽는다. 실제로 2020년 이후 상장한 기업들의 3년 평균 수익률은 동종 산업 평균을 4%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옥석 가리기 나선 시장…성장성·수익성 겸비한 기업은?
물론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슈로더의 애덤 파스트럽 미주 멀티에셋 대표는 "과거 닷컴 버블 시기와 달리, 오늘날 기업들은 더 오랜 기간 비상장 상태로 내실을 다진 후 상장하는 경향이 있다"며 "고평가 위험은 여전하지만, 기초체력이 더 견고한 기업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세계 IPO 열풍은 한국 증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국내 신규 상장 기업이 90~100개에 이르고, 총 공모 규모는 9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소수의 대형 거래에 공모 자금이 집중되는 구조 탓에, 이들 중 일부라도 흥행에 실패하면 전체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앞으로 시장의 관심은 '대어급' 주자들에게 쏠릴 전망이다. 소프트웨어 기업 솔레라, 로보어드바이저 웰스프론트, 암호화폐 운용사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 등이 상장을 준비 중이며, 2026년에는 AI, 데이터 분석, 핀테크 등 신성장 분야의 거물급 유니콘인 데이터브릭스, 스트라이프, 파나틱스 등이 등판을 예고하고 있다. 오픈AI와 스페이스X의 상장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PwC의 마이크 벨린 미국 IPO 부문 대표는 "직원과 초기 투자자에게 보상하고 기업의 인수합병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유니콘이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IPO 열풍 속에서 가장 분명한 수혜자는 개별 기업의 성패와 무관하게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같은 투자은행들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