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소비 급감·물가 급등 이중고…식료품값 2년 만에 최고치 기록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금리 인하에도 소비자 지출이 "계층별로 나뉘어 둔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부유층 소비 의존도 심화…"불균형한 소비구조"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연간 25만 달러(약 3억4900만 원) 이상을 버는 상위 10% 소득층이 올해 2분기 전체 소비 49.2%를 차지했다. 이는 2년 전 같은 기간 45.8%에서 3.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클레어 리 무디스 신용전략 부사장은 "미국 소비자 지출이 전체적으로는 둔화될 뿐만 아니라 계층별로 나뉘어 이뤄지고 있어 큰 문제"라며 "경제가 좋아질 때는 부자만 좋아지고, 경제가 나빠질 때는 가난한 사람만 고통받는다면 미국 경제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점은 중산층과 고소득층도 소비 패턴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미키 차다 무디스 소매 분석가는 이들이 대형 구매에 더욱 신중해지며 대량 구매와 저가 매장 이용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할인매장으로 유명한 월마트, 달러제너럴, 달러트리는 투자자들에게 "돈 많은 고객들도 이제 우리 매장에서 싸게 사려고 한다"며 부유층 고객 증가로 매출이 늘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의 마셜 코헨 수석 소매 자문관은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경제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지금은 주로 부유층이 이런 소비를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을 쓰는 사람들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코헨 자문관은 "가난한 사람들이 예전만큼 돈을 못 쓰게 되면 그 빈자리를 메우기가 매우 어렵다"며 "저소득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생기는 소비 감소를 다른 방법으로 채우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주거비·전기료 급등으로 서민생활 직격탄
저소득층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활비 부담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가스와 전기 요금이 각각 전년 동월보다 13.8%, 6.2% 급등했다.
리 부사장은 "가난한 집(소득 하위 20%)은 벌어들인 돈의 40%를 집값과 전기료에 쓰는 반면, 부유한 집(상위 20%)은 보통 30%도 안 쓴다"며 "저소득층이 생활비 때문에 훨씬 더 힘들어하는 핵심 이유"라고 설명했다.
차다 분석가는 "이들은 다른 것을 사기 전에 우선 집값과 전기료부터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식료품값도 지난달 전월보다 0.6% 상승해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관세 때문에 옷값, 장난감값, 가전제품값, 가구값까지 오르고, 올해 초 재개된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까지 겹치면서 저소득층 가계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무디스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 저축은 코로나19 이전 수준보다 22% 줄었다. 이들은 갑자기 병원에 가거나 자동차가 고장 나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더욱 취약한 상태다.
코헨 자문관은 올해 말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에 이 계층이 더 많은 빚을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모들은 경제가 어려워도 아이들만큼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한다"며 "벌어들이는 돈보다 훨씬 많이 쓰면서 신용카드나 외상으로 사고 나중에 갚으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초 만든 새 법 때문에 앞으로 정부 지원도 줄어들 예정이다. 의료보험 지원과 식료품 구입 도움(SNAP) 등이 축소되면서 "사람들이 전에는 정부가 도와줘서 안 써도 됐던 돈을 이제 직접 써야 하고, 그러면 다른 곳에 쓸 돈이 더 줄어든다"고 코헨 자문관은 전망했다.
주요 기업들 매출 전망 줄줄이 하향 조정
소비 위축은 기업 실적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 타겟의 릭 고메즈 최고상업책임자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계속되는 불확실성과 변동성 때문에 하반기를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펩시코, 킴벌리클라크, 프록터앤드갬블 등 대기업들은 관세 때문에 마진이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비싼 브랜드 대신 싼 브랜드를 사는 경향이 늘면서 올해 수익 전망을 낮췄다.
치폴레, IHOP, 애플비스, 스위트그린 등 외식업체들도 손님들이 돈을 덜 쓴다고 확인했다. 조나단 네이먼 스위트그린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소비자들이 전체로 좋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게 아주 분명하다"고 말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이번 주 발표한 지난달 소매판매 보고서에서도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제 지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보다 아주 조금밖에 늘지 않아 수년간 이어진 소비 호조세가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코헨 자문관은 실제 판매 개수가 상품 종류에 따라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들어 전년보다 약 3% 적다고 밝혔다. 이는 가난한 소비자들이 "더욱 꼼꼼하게 계산하고 절약하며 가성비를 따져 소비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코헨 자문관은 중산층과 부유층이 사는 비디오 게임기, 최신 전자제품, 고급 화장품 같은 비싼 제품들이 일부 분야에서는 매출을 늘릴 수 있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들이 전체 소비 흐름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경고했다.
"지난 두 달 동안 500달러(약 69만 원) 넘는 닌텐도 스위치 2가 잘 팔렸다고 해서 이걸 포함해 계산하면 안 된다"며 "이런 특별한 상품을 빼고 보면 실제로는 소비가 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최근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미국 소비지출이 물가 영향을 제외한 실질 기준으로 올해 2.9% 늘어난 뒤 내년에는 1.4%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