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3배 팽창한 시장, 부도율 사상 최고치 '경고등'
'위험' 알지만 '수익' 못 버려…금융권의 모순된 행보
'위험' 알지만 '수익' 못 버려…금융권의 모순된 행보

"혁신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카지노와 다름없다."
세계 최대 보험사 알리안츠의 올리버 베이트 최고경영자(CEO)가 규제 사각지대에서 팽창하는 사모 신용 시장을 향해 날린 직격탄이다. 은행보다 느슨한 규제 환경 속에서 고수익을 좇는 자금이 몰리면서, 특히 은행 대출에 기댄 레버리지 구조가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유럽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베이트 CEO는 "통제되지 않는" 시장의 성장을 지적하며 "우리가 사람들에게 대출해주는 규제된 은행을 원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고는 사모 신용 시장이 금융 시스템의 보완재를 넘어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담고 있다.
베이트 CEO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은행 자금을 대거 차입해 몸집을 불리는 사모 신용 펀드의 행태다. 이들은 은행 대출을 통해 레버리지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부채 구조로 주식과 같은 높은 수익률을 안겨준다. 그는 은행이 엄격한 자본 규제를 통해 위기 때 손실 흡수 능력을 갖춘 것과 달리 "현재 사모 신용 시장의 많은 구조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험의 최종 보유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명확히 알지 못한다"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모기지 부실 사태와 유사하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2008년과 2009년 위기 이후 대중의 분노를 기억해야 한다"며 또 다른 규제 실패가 정치와 사회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고도 했다.
10년 새 3배 팽창…곳곳에서 터지는 '위험 신호'
하지만 시장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신용평가사 모닝스타 DBRS에 따르면 사모 신용을 이용하는 중견기업의 약 30%가 재정적 압박을 겪고 있다. 기본 부도율(default rate)은 지난 7월 연율 2.2%를 웃돌았으며, 이는 2019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채무 조정 상태에 놓인 기업 비중도 10%에 육박하며, 이들 부실 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25% 이상 급감했다.
만약 중소기업의 연쇄 부도가 현실화하면 그 충격은 펀드에 자금을 댄 은행 시스템 전체로 번지는 '시스템 전이 위험(contagion risk)'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8년 신용부도스왑(CDS) 같은 파생상품이 얽혀 위기를 증폭시켰던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위험' 경고하면서 투자…고수익의 '이중성'
프랑스 2위 은행인 크레디 아그리콜의 제롬 그리베 부회장 역시 규제 공백에 대한 우려를 같이했다. 그는 "은행 안팎에서 대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규제와 통제 수준은 동일하지 않다"며 "은행이 아닌 곳에서 위기가 발생해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사모 신용 시장의 매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사모 신용 상품은 전통 회사채보다 1%포인트(100bp) 이상 높은 수익률을 제공한다. 영국의 아비바 CEO 아만다 블랑과 리걸 앤 제너럴 CEO 안토니우 시모에스 등은 연금 고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모 자산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위험을 경고하는 금융기관들의 이중적인 태도다. 알리안츠(자회사 핌코)와 크레디 아그리콜(자회사 아문디) 등은 시장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산운용 자회사를 통해 사모 신용 시장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고수익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필요와 잠재적 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가 충돌하는 모순된 상황을 드러낸다.
시장은 고수익의 매력과 시스템 위험의 공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베이트 CEO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뜻을 명확히 했다. "저는 원칙적으로 사모 대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위험 관리 없는 통제되지 않는 사모 대출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모 신용 시장이 은행 시스템의 보완재를 넘어 전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