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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우크라이나, AI 로봇 앞세워 '지뢰와의 전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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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우크라이나, AI 로봇 앞세워 '지뢰와의 전쟁' 선포

국토 23%가 '죽음의 땅'…수작업으론 757년 걸릴 국가 안보의 족쇄
1000만원대 '소모품 로봇'과 AI 드론, 인도주의·전후 복구의 돌파구로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우크라이나 국토를 뒤덮은 지뢰를 제거하는 데 757년이 걸릴 것이란 암울한 전망 속에,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했다고 포브스 재팬이 지난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 드론이 지뢰 지도를 작성하고 저가형 로봇이 위험 지대에 투입되는 방식은 포화 속 인명을 구하는 인도주의적 해법이자, 전후 국가 재건을 위한 기술적 도약으로 평가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의 지뢰 오염국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국토의 약 23%가 지뢰나 불발탄 위험에 노출됐다. 세계은행(WB)은 이 거대한 땅을 정화하는 데 최소 370억 달러(약 52조 원)가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기존 방식으로는 757년이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까지 나온다.

지뢰 제거 작업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전쟁이다. 지난 9월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덴마크 난민 위원회(DRC) 소속 인도주의 지뢰 제거팀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인도주의 활동마저 전선에서 직접 공격의 대상이 되면서 원격·자율 시스템 도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뢰는 최전선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 변수이기도 하다. 2023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당시 가장 큰 장애물은 러시아군이 구축한 거대한 지뢰밭이었다. 우크라이나 공병부대는 적의 드론 감시와 포격 속에서 해 질 녘에 포복으로 기어가며 지뢰를 찾아내야 했다. 특히 '꽃잎 지뢰'나 '토 포퍼' 같은 소형 대인지뢰는 수많은 장병에게 신체 절단이라는 치명상을 입혔다.

AI와 '소모품 로봇', 절망에 던진 출사표


이런 절망적인 현실에서 덴마크-우크라이나계 방산 스타트업 '드로플라 테크'가 AI와 로봇 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2023년 설립된 이 회사는 덴마크 오덴세에 본사를, 옛 소련의 로켓 산업 중심지였던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 핵심 기술팀을 두고 있다.

개발의 동기는 군의 요청이 아닌, 지뢰로 고통받는 자연의 신음이었다. 우크라이나 환경보호부가 "지뢰 때문에 숲과 야생동물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전해온 것이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드로플라 테크의 드미트로 자루빈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 전문성을 우크라이나 최대의 과제에 적용하자"는 생각으로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드로플라 혁신의 중심에는 AI 기반 지도 제작 기술과 여러 모듈을 바꿔 끼울 수 있는 무인지상차량(UGV) '로지스트'가 있다. 먼저 센서 5종을 갖춘 드론이 지뢰 의심 지역 위를 날며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를 AI 모델로 보내 위험 등급별로 색상을 구분한 정밀 지도를 생성한다. 현재 정확도는 약 80% 수준이며, 100만 장이 넘는 이미지 데이터를 AI에 계속 학습시켜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지도가 완성되면 UGV '로지스트'를 투입한다. 이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약 7000유로(약 1150만 원)에 불과한 가격이다. 수십만 유로를 웃도는 서방 군용 시스템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현장에서 수리가 쉬운 '소모품' 개념을 적용해 병사의 희생을 막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대안을 만든 셈이다. 로지스트는 제초용 모듈을 달아 공병의 시야를 터주거나, 지뢰 처리 모듈로 대인지뢰를 직접 터뜨리는 등 임무에 맞춰 부품을 바꿀 수 있다. 나아가 병사들이 인명피해가 잦은 보급로에서 직접 쓸 수 있는 휴대용 AI 장비도 개발해 실시간으로 지뢰를 탐지하고 피하도록 돕는다.

전쟁이 낳은 혁신, 평화 재건의 씨앗으로


이들의 기술력은 정부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드로플라 테크는 지난해 8월 덴마크 수출투자기금(EIFO) 등으로부터 총 240만 유로(약 39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국방기술 육성 창구 '브레이브1'을 통해 현장 군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AI 성능을 지속해서 개선하는 실전 피드백 체계도 구축했다.

공개출처정보(OSINT) 무기 분석가 로이 가디너는 "드론에 실린 지뢰 탐지 시스템은 군사와 인도주의 임무 모두에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공병들이 진입하기 앞서 지뢰지대의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원격·자율 로봇 투입을 결정할 수 있어 인명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AI 탐지 시스템은 작전이 되풀이될수록 신뢰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기술 실험실'로 내몰았다. 절박한 필요가 낳은 AI와 로봇 기술은 현재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가 재건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농지, 숲, 도시 등 모든 곳의 지뢰를 없애야만 경제 회복이 가능하기에, 드로플라의 기술은 장기적인 평화 구축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비극 속에서 피어난 기술 혁신이 인류에게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