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40% 차지하던 최대 시장의 그늘
AI 반도체 R&D 투자로 '정면 돌파'
AI 반도체 R&D 투자로 '정면 돌파'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 도쿄 일렉트론의 수익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AI 반도체 시장의 중장기 성장세에 대한 낙관론에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불어온 한파와 전방 산업의 투자 위축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2026 회계연도(2026년 3월 마감) 순이익 전망치를 기존보다 18%가량(약 5700억 엔) 낮췄다. 이번 결정으로 2027년 3월까지 예정된 중기 사업 계획의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지면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단기적인 실적 악화와 별개로 2025년 매출은 D램과 HBM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도쿄 일렉트론의 이번 결정은 반도체 장비 시장이 마주한 단기 불확실성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쿄 일렉트론의 가와모토 히로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닛케이 아시아와 한 인터뷰에서 "반도체 장치 시장 자체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핵심인 웨이퍼 팹 장비(WFE) 시장의 수요 변동성이 커지면서 중기 사업 목표 달성이 늦춰질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2026 회계연도 전 세계 WFE 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5%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이번 수익 예측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중국발 '나비효과', 반도체 장비 시장 덮쳐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시장의 급격한 냉각이다. 한때 회사 전체 실적을 이끌던 중국의 매출 비중이 기존 42% 수준에서 2025년 30~35%, 나아가 2026년에는 25~3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익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PC 등 IT 기기 수요 부진이 길어지면서 주요 고객사인 낸드플래시 제조업체들이 감산과 비용 절감에 들어가며 장비 투자를 줄이는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선 영향이 크다. 여기에 최첨단 공정을 다루는 로직 반도체 고객사들마저 투자 계획을 미루면서 2026년 1분기로 기대했던 장비 수주 회복 시점은 더욱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도쿄 일렉트론은 TSMC를 뺀 대부분의 첨단 로직 반도체 시장이 복잡한 기술 과제와 극한의 시장 경쟁에 놓여 있어, 단기 수요 예측이 매우 불안정하고 변동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만 회사는 최근 서울에서 연 IR 행사 자료에서 미·일 수출 규제 등 지정학 문제가 투자 불확실성을 키고는 있으나, 단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된다고 선을 그었다.
'기술 초격차'로 위기 넘는다…R&D에 미래 걸어
그렇지만 도쿄 일렉트론은 단기적인 파고 너머 장기 성장 가능성에는 여전히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회사는 앞으로 본격화할 AI 칩 생산량 증가가 가져올 장비 교체 수요를 기회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기술 혁신을 이어가고자 연구개발(R&D) 예산을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늘리며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 디지털 트윈, 디지털 전환(DX)에 바탕을 둔 생산 자동화와 스마트 생산 체계 구축이라는 구체 목표도 세웠다. 특히 제품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 확대의 뿌리가 되는 에칭(Etching, 식각), CVD(박막 형성) 등 회사의 핵심 반도체 공정 기술력을 다지는 데 더욱 힘쓸 계획이다.
이러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압도적인 기술 격차가 있다. 도쿄 일렉트론은 반도체 초미세공정의 핵심인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용 코팅 및 현상 장비 시장에서 거의 100%에 이르는 독점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2024년 3월 기준 2만 3249건에 이르는 관련 특허를 보유하며 이 분야의 확고한 지배력을 다시 확인했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이 외 다른 주요 장비 부문인 에칭, CVD 등에서도 약 20~30%의 안정적인 점유율을 지키고 있으며, 시장 변화에 맞춰 다각화를 꾀하는 영역 확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도쿄 일렉트론의 이번 실적 전망 하향은 거시 경제 상황과 기술 전환 주기라는 이중고 속에서 세계 반도체 장비 공급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단기 전망은 어두워졌지만, AI가 이끌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먼저 차지하려는 기업들의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도쿄 일렉트론 역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핵심 전략으로 기술 혁신을 삼고 있다. 회사는 중국 비중 축소에 대응해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수익성을 지키고, 미야기 신공장 증설을 통해 2029년까지 생산능력을 최대 3배까지 끌어올리는 등 원가 경쟁력 강화에도 나선다. 동시에 첨단 패키징, 환경친화 공정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위험 분산에 힘쓰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