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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그림자 총리' 스티븐 밀러, 하루 3000명 불법체류자 체포 명령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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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그림자 총리' 스티븐 밀러, 하루 3000명 불법체류자 체포 명령 주도

이민정책 넘어 대학·언론 장악…법원 금지명령 25건으로 바이든 때 6배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 실세로 불려지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참모장 겸 국토안보 고문의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 실세로 불려지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참모장 겸 국토안보 고문의 모습.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선거로 뽑히지 않은 인물 가운데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르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참모장 겸 국토안보 고문이 이민정책을 넘어 대학과 언론, 문화계 전반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9(현지시각) 밀러가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을 빌미로 좌파 탄압을 강화하면서 미국 사회 갈등을 키운다고 비판하는 심층 보도를 냈다.

배넌 "사실상 총리…모든 정책 관여"


스티브 배넌 트럼프 1기 수석전략가는 밀러를 두고 "그는 사실상 총리"라며 "국가안보와 재무 일부를 빼면 거의 모든 국내 정책에 깊숙이 관여한다"고 말했다.

밀러는 트럼프 1기 때부터 유일하게 트럼프와 가까운 관계를 이어오다 올해 1월 백악관에 다시 들어왔다. 법정에 나온 불법체류자 체포, 출생시민권 폐지 추진, 로스앤젤레스 거리 무장 주방위군과 해병대 배치가 모두 그의 주도로 이뤄졌다.

트럼프 측근 한 명은 FT"이 모든 게 스티븐이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라며 "대학과 법률회사, 문화기관, 언론에 대한 트럼프의 공세에도 그가 손을 댔다"고 전했다.

밀러는 지난 5월 민주당을 "국내 극단주의 조직"으로 규정했다. 같은 달 이민자에 대한 인신보호영장 정지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법원 금지명령 25건…바이든 때 6


올리비아 트로이 전 국가안보 관계자는 "트럼프가 다시 집권하면 스티븐 밀러가 모든 걸 좌지우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를 견제할 사람이 없어 더 극단적인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포워드의 스카이 페리먼 대표는 "행정부가 법원 명령을 안 따라도 된다거나 국민 헌법상 권리를 거꾸로 국민을 억누르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식 극단주의 뒤에는 밀러 손길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당파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트럼프가 재임한 첫 100일 동안 연방법원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25건 금지명령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 때 4건과 견줘 6배가 넘는다.

하루 3000명 체포 지시…이전 평균 4


밀러는 지난 5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과 함께 워싱턴에서 이민 단속 고위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실적을 다그쳤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하루 3000명 체포 할당량을 정했다. 이는 트럼프 2기 첫 몇 달 평균과 견줘 4배에 이른다.

그 뒤 법정에 출석한 망명 신청자를 이민 요원이 체포하거나 홈디포 주차장에서 일거리를 기다리던 멕시코인 일용직 노동자를 급습하는 영상이 퍼졌다.

시위가 번지자 트럼프는 소동을 잠재우려고 주방위군을 풀었다. 밀러는 소셜미디어 엑스에 로스앤젤레스가 "적에게 점령당한 땅"이 됐다며 "우리는 수년간 '이건 우리 문명을 지키려는 싸움'이라고 말해왔다. 이제 모두가 그 말이 맞다는 걸 본다"고 썼다.

커크 추도식서 좌파 향해 "용을 깨웠다" 주장


밀러는 이달 21일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추도식에서 좌파 세력을 향해 "당신들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모른다. 잠자던 용을 깨운 셈"이라며 "우리 문명과 서구 사회, 이 나라를 지키려는 우리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두고 보라"고 경고했다.

커크는 지난 10일 유타주 오렘 유타밸리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보수단체 '터닝포인트USA' 행사 도중 총에 맞아 숨졌다. 22살 타일러 제임스 로빈슨이 범인으로 체포됐다.

JD 밴스 부통령과 팟캐스트에서 밀러는 커크 죽음에 대한 분노를 "테러 조직을 뿌리 뽑고 부수는 데" 쏟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추도식에서 밀러는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악함이다. 질투다. 증오다"라고 맹비난했다. 이는 고인 아내 에리카 커크가 "증오에 답은 증오가 아니다"라며 남편 살인범을 용서한다고 한 것과 극명하게 엇갈렸다.

법률 교육 없이 227년 묵은 법 끌어내


법률 교육을 받지 않은 밀러는 극단 정책을 정당화하려고 애매한 법 논리를 끌어댄다. 2023년 보수 팟캐스트에서 그는 1798년 만들어진 '외국인 적성국민법'을 근거로 들었다. 이 법은 전쟁이나 침략 위험이 있을 때 대통령이 적성국 국민을 재판 없이 구금하거나 추방할 수 있도록 한 낡은 법이다.

밀러는 이 법을 써서 "약탈하려는 침입"이 있으면 법 절차 없이 대량 추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재집권 뒤 이 방식으로 베네수엘라인을 엘살바도르로 보냈다.

트럼프 1기 국토안보부 관계자 한 명은 "당시 밀러는 '음주운전에 걸렸든 유죄를 받았든 상관없이 이민자 관련 사례를 찾아내라'고 했다. 이민자가 미국인한테 위험하다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나는 그 지시를 따르지 않고 곧 부서를 나왔다"고 밝혔다.

밀러는 트럼프 1기 때 무슬림이 많은 나라 국민 입국을 막는 여행금지령 주요 작성자였다. 2018년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부모와 자식을 떼어놓는 "무관용" 정책도 그가 만들었다.

반대 여론 속 지지 기반도 존재


트럼프 1기 관료 한 명은 "밀러는 어떤 사안에 미국 유권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읽어내는 놀라운 감각이 있다""부유층 중심 명문 대학 같은 엘리트 기관을 공격하는 건 실제로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높은 지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밀러 중학교 친구 제이슨 이슬라스는 "우리 모두가 10대 때 반항심을 어른이 돼서도 계속 키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한테는 그렇게 됐다. 반항심이 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고 말했다.

법원 충돌·정치 폭력…트럼프에 부담 커져


밀러가 주도하는 극단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에 여러 부담을 안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임 첫 100일 법원 금지명령이 바이든 때보다 6배 많다는 건 정책 상당수가 법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커크 암살 이후 밀러가 좌파 탄압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미국 사회 갈등은 더 깊어질 조짐이다. 올해만 민주당 의원 2명과 배우자 총격(6),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 살해(5),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관저 방화(4) 등 정치 폭력이 이어졌다.

FT는 밀러가 법률가가 아닌데도 법 전략을 주도하면서 행정부가 법원에서 계속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포워드 페리먼 대표는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법률 전략을 이끌도록 내버려둔 건 놀랍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