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0억 달러 중 3500억 달러 현금 선불 고집...통화스와프 없인 원화 폭락 불가피

포춘과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들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한미 경제관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포춘은 이날 보도에서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이 한국에 일본이 받아들인 것과 비슷한 조건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투자 프로젝트가 미국 승인을 받은 뒤 바로 현금을 옮기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외환보유액 85% 빼내면 원화 폭락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초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를 빼서 전액 현금으로 미국에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포춘은 전했다.
포춘에 따르면 한국 외환보유액은 4,100억 달러(약 575조 원) 수준이며, 원화는 일본 엔화와 달리 국제 금융시장에서 주요 통화가 아니어서 3,500억 달러를 갑자기 현금으로 옮기면 원화 가치 급락을 부를 수 있다.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 사이 통화스와프 라인이 만들어지면 달러 유동성을 확보해 외환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한국 정부는 설명했다.
한국은 또한 일본과 주요 차이점을 지적했다고 포춘은 보도했다. 일본 외환보유액은 1조 3,000억 달러(약 1,823조 원) 로 한국의 3배가 넘으며, 엔화는 국제 시장 점유율 17%를 차지하는 반면 원화는 2%에 그친다. 일본의 5,500억 달러(약 771조 원) 투자 약속 조건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경고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한국이 "선불로" 돈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고 포춘은 전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주말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입장은 협상 전술이 아니다. 객관으로나 현실로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며 "우리는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지아 합작 공장 단속으로 양국 관계 악화
포춘은 무역 협상을 둘러싼 트럼프의 강경 입장이 이달 초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 합작 공장을 급습해 공장 가동 준비를 돕던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을 잡아간 사건 뒤 양국 관계에 추가 긴장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건은 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성공한 회담을 가진 것처럼 보인 지 며칠 만에 일어나 한국에서 큰 분노를 샀다고 포춘은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이것이 의도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미국은 이 사건을 사과했고 우리는 이와 관련해 합리 방안을 찾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보수언론 "한국 투자 약속 후퇴" 비판
한편 폭스뉴스와 WCCS라디오 등 미국 보수 매체들은 지난 29일 이 대통령이 지난달 백악관 회담 뒤 대미 투자 약속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회담 몇 시간 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그곳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라고 올렸으나, 뒤에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오해나 소문일 수 있다"며 온건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7월 대략 합의한 3,500억 달러 한국 투자와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미국 에너지 구매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WCCS라디오는 이 대통령이 회담 뒤에도 종교 단체를 겨냥하고 야당을 압박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대통령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중요한 것은 외국 군대 없이는 나라 자립 방위가 불가능하다는 복종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올렸다며, 이는 주한미군 주둔을 부정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한국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대가로 워싱턴이 15% 관세율을 정하는 데 합의했으나, 당시 구체 조건은 정하지 않았으며 양측은 최근 협상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