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폴더블 등 차세대 제품 수요 급증…中정부, 보조금으로 투자 지원
삼성·LG 주도 공급망에 균열 예고…'북미-韓, 中-BOE' 구도 굳어지나
삼성·LG 주도 공급망에 균열 예고…'북미-韓, 中-BOE' 구도 굳어지나

디스플레이 업계와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BOE는 중국 쓰촨성 청두에 총 630억 위안(약 88억 달러)을 들여 8.6세대 AMOLED 생산 라인을 짓고 있다. 1·2단계 공사를 통해 2290×2620mm 크기 원판(마더글라스) 기준으로 월 3만 2000장의 패널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1단계(1·2라인)가 초기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2단계(3·4라인)는 본격적으로 IT 기기와 스마트폰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 같은 국제 정세 변화 탓에 2단계(3·4라인) 투자가 늦춰질 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BOE는 사업성을 다시 검토하며 계획을 밀어붙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1·2라인만으로도 초기 목표는 이룰 수 있으나, 3·4라인까지 완공해 자국 내수 시장과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수요를 직접 채우려는 전략이다.
8.6세대 OLED는 생산 효율성이 높아 노트북, 태블릿 같은 IT 기기 패널에 가장 알맞다. 하지만 BOE는 중국 내 막대한 아이폰 판매량을 고려해 새 생산라인의 일부를 스마트폰용 패널 생산에 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BOE는 아이패드용 OLED 개발을 포함해 2019년부터 꾸준히 생산 능력을 키워왔으며, 현재 해마다 1억 대 분량의 아이폰 OLED 패널을 만들 능력을 갖췄다고 전해진다.
'최대 고객' 애플의 부름과 中정부의 지원
BOE의 이 같은 공격적인 움직임 뒤에는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전략 변화가 있다. 애플의 이런 행보는 미중 갈등 속에서도 중국 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다변화 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비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시장의 대세는 이미 OLED로 굳어졌고, 애플의 OLED 채택은 더 빨라질 전망이다.
당장 2025년부터 모든 아이폰 신규 모델에 저온 다결정 산화물(LTPO) 기술이 들어간 OLED 패널을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2026년에는 폴더블 아이폰과 화면 아래로 적외선(IR) 카메라를 숨긴 '언더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델이, 2027년에는 화면 네 면이 모두 휜 '쿼드 커브드' OLED 패널을 갖춘 프로 모델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BOE의 이번 8.6세대 OLED 기술과 양산 능력 확대는 앞으로 나올 애플 신제품 계획과 직접 맞닿아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중국 내수용 제품의 패널 공급 일부를 BOE에 맡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BOE가 애플의 중국 내수 물량을 확보하면, 세계적인 브랜드의 핵심 협력사라는 명성과 중국 시장 점유율 확대라는 이익을 동시에 얻게 된다.
BOE의 투자는 한 기업의 결정을 넘어 중국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립 정책과 깊이 연결돼 있다. BOE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당하고도 투자를 이어가는 배경에는 중국 내수 시장이라는 든든한 버팀목과 정부의 지원이 있다. 광저우, 허페이, 청두 등 주요 거점의 지방 정부들은 패널을 지역 전략 산업으로 정하고 BOE에 막대한 금융,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정부 보조금 덕분에 단기 투자 회수 부담을 덜고 기술 개발과 생산 능력 확장에만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이는 BOE가 2단계 투자를 서둘러 결정할 수 있었던 핵심 배경이 됐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韓, 초격차 기술로 방어해야
현재 고급 OLED 시장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나눠 갖고 있지만, BOE가 애플의 중국 물량 공급사로 입지를 굳히면 시장 구도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이로써 BOE는 단순한 추격자를 넘어, 애플과 중국 정부의 지원을 동시에 받는 시장의 '전략적 중심축'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과 LG의 북미 중심 공급망과 BOE 중심의 중국 내수 공급망이라는 이원화 구조가 만들어진다.
BOE의 이번 투자는 한 기업의 공장 증설을 넘어, 세계 디스플레이 공급망의 구조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플렉서블, 폴더블, 투명 OLED 등 월등한 고급 기술 격차를 지키지 못한다면 시장 점유율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