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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좀비 기업’ 퇴출로 자본주의 체질 개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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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좀비 기업’ 퇴출로 자본주의 체질 개선 나선다

장기 불황 속 정부·日銀, 구조조정·파산 촉진하며 ‘창조적 파괴’ 수용
저금리 연명 끝낸 기업 도산 급증…‘보호보다 경쟁’으로 경제 재편 가속
일본 도쿄 남부 가와사키에 있는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이즈미야 도쿄텐 직원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도쿄 남부 가와사키에 있는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이즈미야 도쿄텐 직원들. 사진=로이터
일본이 수십 년간 좀비 기업을 보호해온 정책에서 벗어나 시장 원리에 따른 창조적 파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랜 침체 속에서 부채 이자만 겨우 갚으며 연명해온 기업들이 이제 퇴출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 경제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고 3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북부 야마가타현 자오 온천 스키 리조트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숙박 사업을 운영해온 사토 가문의 사례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플래그십 호텔 오크힐과 전통 여관 요시다야를 운영하던 이 가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경제 호황 속에서 번창했다.

57세의 치구사 사토 놀렌은 "료칸은 우리의 삶이자 가족이자 사업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 경제 거품이 터진 후 오랜 침체 기간 동안 이들의 호텔은 어려움을 겪었다. 부채 이자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만 벌었고, 일본은행이 금리를 제로로 인하한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2010년까지 일본 기업 5곳 중 1곳은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구제금융과 자금 조달 지원으로만 버티는 상황이었다. 2008년 일본과 미국의 경제학 교수 3명은 이러한 기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좀비 기업'을 만들어냈다.
중소기업 턴어라운드 컨설턴트인 코미야 카즈요시는 "대도시 밖으로 여행하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곳을 꽤 많이 볼 수 있다"며 "일본은 그들을 과잉 보호해왔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실패에 대한 낙인이 근면과 명예로 정의되는 비즈니스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충성심을 제공하는 근로자에 대한 평생 헌신이 표준이기에 소유주들은 문을 닫기를 꺼렸다.

그러나 이제 국가의 금융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2024년 3월 일본은행은 경제 환경 개선과 물가 상승을 반영해 17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일본 정부는 조셉 슘페터가 말한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 즉 약한 경쟁자를 대체할 혁신가의 필요성을 수용하고 있다.

규제 당국은 기업들에게 거버넌스 개선을 촉구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은 구조조정을 간소화하고 턴어라운드를 장려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좀비 기업을 연구하는 성조대학 고토 야스오 교수는 지난해 "기업 부문이 건전한 재생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실적이 저조한 상장 기업들이 수익성을 높이고 투자자들과 더 많이 소통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2024년에는 좀비 기업의 수가 7년 만에 처음으로 소폭 감소했다. 3월에 끝난 한 해 동안 파산은 13% 증가한 10,070건으로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오크힐 건너편의 자오 센터 플라자는 약 2년 전 파산했다.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건물은 파괴됐다. 남은 것은 약 10억 엔(680만 달러)의 미지급 대출과 흙 조각뿐이었다. 시설을 운영하던 후나미 마사루는 "빚 상환은 큰 부담이었다"며 "결국 놓아줄 적절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대기업 파산은 없었고, 일본의 만성적 노동력 부족 덕분에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토 교수는 "소수의 승자 집단은 경제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며 사회 불안 가능성을 경고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