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현대제철 가동률 60%대 급락...포항 '산업위기지역' 지정
"미국 1위 수출국인데"...철강도시 고용 3.5% 감소, 트럭기사 수입 3분의 1 줄어
"미국 1위 수출국인데"...철강도시 고용 3.5% 감소, 트럭기사 수입 3분의 1 줄어

지난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강덕 포항시장이 지난달 워싱턴 백악관 북쪽 잔디밭 건너편 공원에서 "동맹국 대한민국에 철강 관세 부과를 중단해 달라"는 영문 현수막을 들고 시위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앞 1시간 시위..."죽음 문턱 선 철강도시"
이 시장은 올여름 지역 공무원들과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를 50%로 올리자 "미국에 가서 항의해야겠다"고 말했다가 동료들한테서 웃음을 샀다. 하지만 63세인 이 시장은 농담이 아니었다.
WSJ에 따르면 그는 약 한 달 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백악관 앞에서 직접 시위를 벌였다. 이 시장은 시청 직원 및 관계자들과 함께 "동맹국 대한민국은 왜 철강 관세를 받아야 하느냐"는 취지를 담은 대문자 영문 현수막을 들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시위 현장에는 관광객과 다른 시위자, 경비원들로 붐볐다. 이 시장은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관심했으나, 일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거나 손을 흔들며 지지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2014년 첫 당선 후 두 차례 재선에 성공한 포항 토박이인 이 시장은 "시민들을 대신해 뭔가 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힘과 용기,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동률 60%대로 급락...2만 7700명으로 고용 감소
한국 철강산업은 한때 전후 경제 부흥기에 국가를 세우는 경제 엔진이었다. 동남부 해안 항구도시인 포항이 떠오른 것은 한국 철강산업, 나아가 한국 경제 자체가 커지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1968년 포항에 세운 포항제철(현 포스코)은 조선, 자동차, 건설 등 한국 주력 산업을 뒷받침하며 국가 현대화와 발전의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최근 몇 해 한국 철강산업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산 싼값 공급 과잉 탓에 가격 하락을 겪었다. 포스코는 지난해 악화한 경영 여건 때문에 포항에 있는 제철소 2곳을 닫고 희망퇴직을 받았다. 국내 2위 철강업체인 현대제철도 포항 공장을 닫고 비슷한 인력 감축 조치를 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7월 1차 철강 생산 분야 고용 인원은 2만 7700명으로, 지난해 11월보다 3.5% 줄었다. 포항 주요 철강업체들의 공장 가동률은 지금 60~70%로, 과거 90%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다.
이 시장은 "미국이 지난 3월 모든 나라 철강 수입품에 25% 관세율을 매겼을 때, 포항 업계 관계자들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자'며 머리를 맞댔다"며 "하지만 지난 6월 관세가 50%로 올라가자 절망뿐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1위 철강 수출국이며, 포항은 국내 최대 철강업체들이 자리잡은 도시다. 미국과 한국은 지난 7월 말 타결 직전까지 갔던 무역협정 조건을 아직 조율 중이다. 트럼프가 잠정 합의를 발표했지만, 철강 관세 변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입 3분의 1 줄어"...지역경제 전반 타격
현장의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제철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빈 트럭들이 거리에 줄지어 있으며 차량 기지에는 갈수록 더 많은 트럭이 멈춰 선 채 방치돼 있다.
포스코가 만든 철강 코일을 운송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 트럭 기사는 미국 관세 시행 뒤 배송량이 줄면서 수입이 3분의 1 감소했다고 밝혔다. 24t 평판 트럭을 가진 이 트럭 기사는 포항 창고 옆에 트럭을 세워둔 채 "세 딸을 철강 운송으로 키워낸 나야 그렇다 해도, 어린 자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젊은 트럭 기사들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철강 배송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최근 몇 해 수익이 줄었다"며 "매출이 평소의 50%밖에 안 돼 회사와 기사들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때 천장 가까이까지 쌓였던 재고는 경기 둔화 탓에 줄어든 상태다.
포항 중심 상가에서는 방문객과 소비 감소 때문에 많은 가게 주인들이 문을 닫았다고 상가 주인 모임 회장은 "수요 감소 탓에 임대료가 지난 1년간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왜 동맹국이 관세 폭탄 맞아야 하나"
이 시장은 지난 8월 말 포항이 한국 정부한테서 '산업위기지역' 지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포항 기업들은 더 많은 보조금과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이 시장은 워싱턴이 중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철강 관세를 광범위하게 매기기로 한 결정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이 중국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동맹국"이라며 "한국이 약해지면 미국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터널 끝에 빛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백악관 앞 시위를 마친 뒤 이 시장은 내셔널몰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았다. 한국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미군 병사들의 이름을 읽으면서, 그는 양국이 함께한 역사와 지금의 괴리에 대해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 시장은 "참으로 이상한 감정이 계속 머릿속을 스쳤다"며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지킨 한국이 왜 지금 미국한테 어려운 상대가 돼 관세 폭탄을 맞아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백악관은 WSJ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맡은 한국 정부 부처는 워싱턴과의 협상에서 관세 부담을 덜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