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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IMF, 'AI 거품·부채' 4대 복합 위기 경고…세계 경제 침체 공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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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IMF, 'AI 거품·부채' 4대 복합 위기 경고…세계 경제 침체 공식화

"느리게 타오르는 위기"…공식 낙관론 이면의 비관론 팽배
미 정부폐쇄·보호무역주의에 다자체제 '균열'…미국의 일방주의 심화
미국 워싱턴 본부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로고. 글로벌 경제 수장들이 미국 워싱턴 D.C.에 모여 AI 거품, 부채 급증 등 4대 복합 위기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느리게 타오르는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하며, 공식적인 낙관론 뒤에 비관론이 팽배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워싱턴 본부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로고. 글로벌 경제 수장들이 미국 워싱턴 D.C.에 모여 AI 거품, 부채 급증 등 4대 복합 위기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느리게 타오르는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하며, 공식적인 낙관론 뒤에 비관론이 팽배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로이터
세계 경제의 향방을 논하는 최고위급 정책결정자들이 미국 워싱턴 D.C.에 집결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국제금융협회(IIF)의 연차총회가 동시에 열린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회의장을 감싼 공기는 겉으로 내세운 '조심스러운 낙관론' 이면에 짙은 위기감이 깔려 무거웠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 연방정부의 업무정지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세계 경제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인공지능(AI) 거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부 부채, 제도 신뢰 하락, 세계 통합 약화라는 '4대 복합 위기'가 세계 경제를 '느리게 타오르는' 침체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아닌,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오는 위기의 경고음이 세계 경제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낙관론 뒤에 숨은 비관론, 워싱턴의 두 얼굴


블룸버그의 브렌던 머레이 글로벌 무역 보도 총괄은 현장 분위기를 "최악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분위기"라고 요약했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관세와 급증하는 정부 부채 탓에 금융 긴장이 높아지면서, 세계 경제가 갑작스러운 충격보다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퍼져있다"고 전했다.

이런 양면적 분위기는 IMF 내부에서도 드러났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공식 석상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력을 강조하며 낙관론을 폈지만, '오드 랏츠(Odd Lots)' 팟캐스트의 트레이시 얼러웨이 진행자는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IMF 내부 관계자들은 총재의 발언에 놀랐다"며 "며칠 전 한 부총재가 비공개로 한 사전 설명회 분위기는 훨씬 더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다"고 말했다.

IMF가 공식 지목한 4대 하방 위험


이번 총회에서 IMF가 공식 지목한 세계 경제의 4대 하락 위험이 가장 큰 주목을 끌었다. IMF의 피에르-올리비에 구랭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네 가지 위험 요인을 조목조목 짚었다.

첫째, 'AI 붐'이 25년 전 '닷컴 버블'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다. 구랭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과거의 인터넷이 지금의 AI"라며 과도한 투기 열풍을 우려했다.

둘째, '제도 신뢰 하락'이다. 그는 "중앙은행을 향한 압력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에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책 독립성과 신뢰가 흔들리는 현상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셋째, '정부 부채 급증'이다. 그는 "너무 많은 국가가 미래 충격에 대비할 재정 여력을 충분히 다시 쌓지 못했다"며 각국의 방만한 재정 운용에 경종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세계 통합의 붕괴'를 꼽았다.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장벽이 퍼지면서 세계 경제의 구조를 해치는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IMF는 이 때문에 세계 경제 성장률이 기존의 3.5~4% 수준에서 2.5~3% 수준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랭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관세 충격은 이미 현실이 됐고, 가뜩이나 취약한 성장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고 진단했다.

흔들리는 다자주의…미국의 '일방통행'


제도 신뢰 하락의 중심에는 미국의 '일방주의'가 있다. '오드 랏츠'의 조 와이젠탈 진행자는 "미국 정부가 업무를 멈춘 현실과 다자주의 기관의 기반이 약해지는 현상은 직접 연결돼 있다"며 "이들을 지지할 정치 의지가 사라진다는 점이 안정성을 둘러싼 가장 큰 우려"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은 IMF를 통한 다자 해법 대신 직접 양자 거래로 국제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200억 달러 구제금융이 대표 사례다. 얼러웨이 진행자는 "아르헨티나는 IMF의 단골 구제금융 수혜국이었지만, 이제 미국이 재무부를 통해 직접 나서서 '전략 동맹'이라는 이유로 아무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힘만 강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브렌던 머레이 총괄은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의 행동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수십 년간 세계화를 이끌어온 기존 질서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거시 경제의 불안은 금융 시장에도 그대로 번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격해지자 관성에 젖어 있던 투자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와이젠탈 진행자는 "시장을 이끌던 두 축은 관세에 민감하지 않은 AI 거대 흐름과 무역 분쟁이 결국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면서 "무역이 여전히 살아있는 문제이고 미국이 희토류 등에서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투자자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AI를 보는 시각도 복잡하다. 한편에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기대감이 여전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복잡한 자금 조달 방식 이면에 숨은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얼러웨이 진행자는 "엔비디아의 칩 판매 대금이 대출로 이어지고 다시 투자금으로 순환되는 복잡한 금융 구조는 과거 거품을 떠올리게 한다"면서도 "닷컴 거품 붕괴 뒤에도 진짜 승자가 나타났듯이, 투자자들은 자신이 먼저 빠져나오거나 진짜 승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와이젠탈 진행자는 "아직 어떤 거대 기업도 AI에서 투자수익(ROI)을 얻지 못했다고 공식 선언한 적이 없다"며 "누군가 '이것은 그저 다음 단어를 예측할 뿐 별 기능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거품 붕괴의 시작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든 논의는 국제기구의 미래를 묻는 근본 질문으로 향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 적대감 속에서 IMF와 세계은행 같은 다자주의의 상징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통제에 맞서 "동맹들과 공조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미국의 모순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브렌던 머레이 총괄은 "미국은 지난 6개월간 나토(NATO)든 무역이든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간다'는 식의 일방주의를 지켜왔다"면서 "동맹국에 관세를 매기면서 필요할 때 협조를 요청하는 양다리 걸치기가 과연 가능할지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연합(EU) 같은 경제권은 미국의 이런 행보를 그들의 셈법에 모두 반영할 것"이라며 "앞으로 미국의 일방주의와 다자주의의 낡은 잔재 사이에 격렬한 밀고 당기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가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워싱턴 총회는 명확한 해답 대신 다자주의 체제의 근본 균열과 '느리게 타오르는 위기'의 현실만 다시 확인한 채 막을 내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