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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인텔, AI 소프트웨어 '짐렛 랩스' 전격 투자…'칩 거인'의 1670억 달러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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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인텔, AI 소프트웨어 '짐렛 랩스' 전격 투자…'칩 거인'의 1670억 달러 승부수

칩 제조 중심서 'AI 효율'로 전략 선회…고수익 SaaS 시장으로 영토 확장
엔비디아 GPU 의존도 낮추는 '통합 관리' 기술…AI 연산 비용 절감 '묘수'
인텔의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 1670억 달러(약 240조 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다. '칩 거인' 인텔의 립부 탄 최고경영자가 비공개 활동에서 막 벗어난 신생 AI 소프트웨어 기업 '짐렛 랩스(Gimlet Labs)'에 전격 투자한 사실이 22일(현지시각) 알려졌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텔의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 1670억 달러(약 240조 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다. '칩 거인' 인텔의 립부 탄 최고경영자가 비공개 활동에서 막 벗어난 신생 AI 소프트웨어 기업 '짐렛 랩스(Gimlet Labs)'에 전격 투자한 사실이 22일(현지시각) 알려졌다. 사진=로이터
이번 투자는 단순한 벤처 투자를 넘어, 엔비디아 GPU(그래픽 처리 장치)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로 대변되는 'AI 연산 혼란'의 해법을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찾겠다는 인텔의 중대한 전략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수면 위로 부상한 짐렛 랩스는 인텔 CEO 립부 탄을 비롯한 저명한 초기 투자자(엔젤 투자자)들한테서 1200만 달러(약 172억 원) 규모의 초기 단계 투자(시드 펀딩)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 AI 열풍(붐)을 주도하는 엔비디아 등 고성능 칩의 엄청난 비용과 공급 부족 현상에 대한 시장의 직접적인 응답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투자는 인텔이 10월 23일(현지시각) 장 마감 후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시점에 공개돼 더욱 주목받는다. 인텔의 주가는 최근 좋은 신호들에 힘입어 9월 25달러 선에서 38달러까지 급등한 바 있다. 지난 9월 18일에는 경쟁사 엔비디아가 인텔 지분 4%에 해당하는 50억 달러(약 7조 1900억 원)를 투자, 양사 간 전략 동반 관계(파트너십)를 체결했다. 양사는 새로운 데이터 센터 개발, 기술 통합, PC 제품 공동 생산에 협력할 예정이다.
한 달 앞선 8월에는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인수하며 '전략 미국 자산'이라는 지위를 공고히 했다. 이 소식에 기관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중대 발표들이 이어진 후 열리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시장은 인텔의 구체적인 전략 실행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극적인 변화는 인텔 경영진(리더십)이 기존의 자본 집약형 칩 제조 사업을 넘어, AI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큰 병목 현상 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고수익 소프트웨어에 투자(베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투자자들 관점에서는 가속화되는 AI 군비 경쟁에서 진정한 부(富)가 창출될 영역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 통합 관리(오케스트레이션)'가 '새로운 석유'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GPU 비효율 정조준…'AI 통합 관리'란


'1200만 달러의 비밀 병기'로 부르는 짐렛 랩스는 이미 AI 네이티브 기업 및 포춘 500대 기업에 자사 기술(플랫폼)을 조용히 배포해 "천만 달러 단위(8-figure)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형 언어 모델(LLM) 구동 같은 대부분의 고급 AI 작업은 엔비디아의 고가 GPU에 의존한다. 이 강력한 칩은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종종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기업들이 유휴 상태이거나 용량 미달로 작동하는 하드웨어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짐렛의 최첨단 소프트웨어는 'AI 시대의 VM웨어(VMware)' 역할을 하도록 설계했다. 과거 서버 하드웨어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했던 가상화 거인 VM웨어에 견줄 만하다.

짐렛의 기술(플랫폼)은 AI 작업(워크로드)을 기본 하드웨어에서 원활하게 분리하고, 작업을 지능형으로 '분할'한다. 이후 각 구성 요소를 고성능 GPU, 표준 CPU, 맞춤형 가속기 등 현존하는 가장 효율 높고 비용 효과가 큰(비용 효율적인) 칩으로 자동 연결(라우팅)한다.

'칩 거인'의 생존 전략…수익 다각화 노린다


인텔 CEO가 경쟁사의 하드웨어를 최적화하는 신생 벤처(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인텔의 전략상 절박함과 선견지명을 동시에 보여준다.

현재 시가총액 약 1670억 달러(약 240조 원)에 이르는 인텔은 극심한 경쟁 압력 속에서 수익성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10%가 넘는 인력을 감축하는 등 비용 절감 조치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주가는 52주 최저가인 17.66달러까지 추락했다가, 최근 회복세를 보이며 52주 최고가인 39.65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이번 3분기 실적을 주당 0.02달러 순이익(EPS)과 131억 7000만 달러(약 18조 9600억 원) 매출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32억 8000만 달러(약 19조 1190억 원) 매출에 주당 0.46달러 순손실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흑자 전환을 기대하는 수치다.

이번 투자의 배경이 된 재정 맥락은 명확하다. 첫째, '수익 다각화'다. 인텔은 역사상 막대한 자본 지출(CAPEX)이 필요한 제조업체였다. 짐렛 지원을 통해 인텔은 자산 집약도가 훨씬 낮고 반복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수익을 창출하는 고수익 소프트웨어 계층에서 가치를 확보, 전반의 재무 위험 구조(프로필)를 개선할 수 있다.

둘째, 'AI 연산 비용 절감'이다. 대규모 AI 모델 훈련 및 운영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짐렛의 통합 관리 소프트웨어가 AI 작업 단위 비용을 크게 낮춘다면, 주요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제공업체의 자본 수익률(ROI)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기업 부문 전반의 AI 도입이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전략 생태계 구축'이다. 투자자들이 하드웨어 제조사를 쫓는 것에서 AI 연산 스택(컴퓨트 스택)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기술(플랫폼)로 눈을 돌리는 가운데, 인텔은 필수 소프트웨어 계층의 일부가 되어 급성장하는 AI 기반(인프라) 시장에서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은 인텔의 차세대 하드웨어 개발 계획과 맞물려 상승 효과(시너지)를 낼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이번 실적 발표에서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의 진행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또한 AI 작업에 중점을 둔 차세대 프로세서 '팬서 레이크(Panther Lake)'가 올해 말 출시될 예정이다. '팬서 레이크'는 18A 공정 노드를 기반으로 구축된 최초의 소비자용(클라이언트) SoC(시스템 온 칩)로, 50 TOPS(초당 테라 연산) 성능의 NPU(신경망 처리 장치)를 탑재한다. 이 외에도 '울트라 200V' 시리즈 프로세서 출시 이후 PC 교체 주기가 도래함에 따라 소비자(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CCG)의 실적 개선과, 데이터 센터 및 AI 그룹(DCAI)을 위한 '제온 6' 및 '가우디 3' 프로세서와 가속기의 시장 확대 역시 핵심 관전 포인트다.

2025년 3월 인텔의 지휘봉을 잡은 립부 탄 CEO의 이번 투자는 단순한 개인 투자를 넘어선 공개 '신호'다. 그는 전임자인 팻 겔싱어 CEO 퇴임 이후 막대한 재정 손실과 제조 공정 차질로 어려움을 겪던 회사를 물려받아 극적인 실적 호전(턴어라운드)을 실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탄 CEO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CEO로 재직하며 회사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키고 시장 가치를 대폭 끌어올린 입지전의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짐렛과 같은 혁신적(파괴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을 지원해, 인텔의 새 경영진(리더십)이 단순한 칩 제조를 넘어선 '생태계 중심 접근'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주주들과 시장에 알리는 효과가 있다.

기존(레거시) 하드웨어 거인(인텔)이 소프트웨어 혁신 기업(짐렛)을 지원하는 모습은 AI 패권 장악을 위한 궁극의 경쟁이 공장 바닥(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영역(스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