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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한화-한미반도체, 'HBM 핵심 장비' 특허 맞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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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한화-한미반도체, 'HBM 핵심 장비' 특허 맞소송

한미 "적반하장" vs 한화 "핵심 기술 보호"…HBM3E TC 본더 놓고 정면충돌
'고객사' SK하이닉스 공급망 다변화 속 '밥그릇 싸움'…K-반도체 생태계 파장
한화세미텍 TC본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핵심 장비인 TC 본더 시장을 두고 한화세미테크와 한미반도체가 특허 침해 맞소송을 벌이며 정면충돌했다. 사진=한화세미텍이미지 확대보기
한화세미텍 TC본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핵심 장비인 TC 본더 시장을 두고 한화세미테크와 한미반도체가 특허 침해 맞소송을 벌이며 정면충돌했다. 사진=한화세미텍
국내 HBM(고대역폭 메모리) 장비 시장의 패권을 두고 격돌해 온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 간의 기술 분쟁이 결국 전면적인 법적 다툼으로 번졌다. 2024년 12월 한미반도체가 먼저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최근 한화세미텍이 '맞소송'으로 응수하며 양측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이번 맞소송을 '적반하장'이라 규정하며, 양측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로부터 특허 침해 혐의로 피소됐던 한화세미텍이 최근 한미반도체를 상대로 특허 침해 맞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의 HBM3E용 TC 본더(열압착 본더)에 탑재된 일부 모듈 및 부품, 설계 구조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TC 본더는 TSV(실리콘 관통 전극)를 통해 수직으로 쌓아 올린 D램 다이(Die)를 열과 압력으로 정밀하게 접합하는 HBM 후공정의 필수 장비다. 특히 HBM3E와 같은 차세대 HBM 생산에서 공정 정밀도와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설비로 꼽는다.

한화세미텍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소송에 본격 착수했다. 한화 측은 해당 기술이 독자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개발된 것이라 강조하며,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번 조치는 핵심 반도체 장비 기술을 보호하고 불법 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미반도체는 즉각 공식 입장문을 내고 강력히 반발했다. 한미반도체는 "이번 소송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며 "악의적인 선제적 소송"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TC 본더 시장의 세계적 리더이자 최초 상용화 실적을 보유한 자사를 상대로 한 한화의 역소송은 "사실과 다른 '적반하장'"이자 "파렴치한 허위 주장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SK하이닉스 발주 다변화 속 '밥그릇 싸움'


양측의 법적 다툼은 2024년 12월 한미반도체가 한화(당시 한화정밀기계 및 세미텍 전신 포함)를 상대로 TC 본더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미 측은 일부 모듈 및 본딩 헤드 구조 특허를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갈등이 이처럼 격화되는 배경에는 'SK하이닉스'라는 공통의 핵심 고객사가 자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선도 지위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분쟁의 파급력이 크다.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HBM3E 12단 적층 생산에서 한미반도체의 TC 본더 비중이 매우 높았으나, 2025년 상반기 SK하이닉스가 조달 다변화에 나서면서 한화세미텍이 수십억 원 규모의 TC 본더를 수주했다. 이로써 양사 간 경쟁이 본격 가열됐다. 지난 10월 한화가 맞소송 카드를 꺼내 들면서, 양측의 갈등은 전면전으로 고조됐다.

수년 걸릴 법적 공방…K-반도체 공급망 '불똥'


이번 소송 결과는 두 기업의 경영 실적은 물론, 한국의 HBM 후공정 장비 공급망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법원이 한화세미텍의 특허권을 인정할 경우, 관련 특허 기술을 사용한 한미반도체 장비의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미반도체가 제기한 최초의 소송에서 기술 도용이나 침해가 인정될 경우 한화 측의 제품 공급에 제약이 커질 수 있다. 양측 모두 제조·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이나 손해배상 리스크에 노출된 셈이다.

다만, 특허 침해가 최종 확인되더라도 제조 및 판매 금지 조치는 법원 판결 이후부터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고객사에 납품된 장비는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영향을 받지 않을 (소급 적용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국내 특허 소송은 통상 수년이 걸릴 수 있어 현시점에서 명확한 승자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SK하이닉스의 조달 전략이나 양사의 장비 가격·서비스 협상력에는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앞으로 법적 다툼에서는 양측 특허의 유효성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한, 양측이 공급 일정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제조·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병행할지 여부도 시장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SK하이닉스가 멀티벤더(다중 공급사) 전략을 유지할지, HBM3E 이후 차세대 HBM 장비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실을지도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