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관장 해임·4250억 달러 예산 동결 허용..."권력분립 무너뜨린다" 경고
이미지 확대보기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일(현지시각) 대법원이 9개월간 쏟아진 긴급명령을 통해 트럼프의 권한 확대를 허용해왔으며, 오는 5일 관세 부과 권한을 비롯한 일련의 대통령 권한 관련 중대 사건들을 심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트럼프가 연방 관료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명목상 독립기관 수장들을 해임하며, 전통상 의회 소관이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승인해왔다.
긴급 항소 17건 승인...현대사 유례없는 기록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한 긴급 항소 23건 가운데 17건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는 현대 미국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록이다. 나머지 4건은 계류 중이며 1건은 무효로 처리됐다.
매슈 달렉 조지워싱턴대 정치사학자는 "지금까지 대법원은 현대 대부분의 대법원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훨씬 더 유순한 태도를 보였다"며 "법원이 백악관에 '중단'이라고 말한 중요한 사례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훨씬 많은 사건을 긴급 안건으로 대법원에 가져왔다. 이를 통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의 정책이 발효되도록 신속한 결정을 얻어냈다. 대법원 진보 진영은 보수 다수파가 충분한 서면 제출이나 변론, 숙고 없이 중대한 사안을 결정한다고 자주 비판해왔다.
그레이엄 도즈 콘코디아대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행동으로 법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으며, 로버츠 대법원의 대통령 역할에 대한 확장 견해를 이해하고 있다"며 "2기 행정부의 최근 조치들 중 일부는 의도로 법 한계를 시험하며 법원 사건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독립기관장 잇단 해임...90년 판례 뒤집나
대법원은 일련의 임시 판결을 통해 트럼프가 연방거래위원회(FTC), 실적평가위원회, 전국노동관계위원회,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등 독립기관 위원들을 이유 없이 해임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런 판결들은 독립기관 관련 대법원의 주요 판례인 1935년 '험프리 사건' 판결과 배치된다. 당시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의회가 대통령의 위원 해임 권한을 제한함으로써 그런 기관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의회는 이들 기관이 정치가 아닌 초당파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만들었다. 이들 기관에는 선거, 언론, 제품 안전 관련 중대 결정을 내리는 곳들이 포함된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FTC 위원 해임에 대한 반대 의견에서 "다수파는 긴급명령을 통해 이 모든 기관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대통령에게 넘겨줬다"며 "의회가 달리 규정했는데도 다수파는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든, 또는 아무 이유 없이 원하는 위원을 해임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케이건 대법관은 다른 반대 의견에서 대법원 보수 다수파가 험프리 판례를 뒤집을지 결정하기도 전에 트럼프의 FTC 위원 해임 요청을 긴급 안건으로 받아들인 것은 거꾸로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긴급 안건은 올해처럼 우리 자신의 판례가 금지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며 "더욱이 정부 권한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옮기고, 따라서 국가의 권력 분립을 재편하는 데 쓰여서도 안 된다"고 썼다.
대법원은 또 다른 사건에서 트럼프가 교육부 직원 3분의 1 이상을 해고하고 업무를 외주화해 교육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승인했다. 다수파는 이 결정의 근거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진보 진영은 의회가 법률로 이 기관을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통렬한 반대 의견을 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 판결은 행정부에 법률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사람을 해고함으로써 법률을 무효화할 권한을 준다"며 "다수파는 이 판결이 갖는 함의에 눈을 감고 있거나 순진한 것"이라고 썼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지난 100년간 양당의 9명 대통령이 모두 의회 허가를 받은 뒤 행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했다고 덧붙였다.
4250억 달러 예산 동결...의회 권한 침해
대법원은 전통상 의회 권한으로 여겨지던 예산 분야에서도 트럼프의 권한을 강화했다. 트럼프는 연구, 교원 연수, 환경 보전 등을 위한 수십억 달러 예산을 일방으로 동결했다. 의회 민주당 추산으로는 지난 6월 기준 트럼프가 의회 승인 예산 4250억 달러(약 608조 원) 이상의 집행을 거부했다.
한 주요 판결에서 대법원은 트럼프가 40억 달러(약 5조7200억 원) 이상의 해외 원조를 동결하는 것을 허용했다. 정부 관료들은 이 원조가 행정부의 우선순위나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조 단체들이 제기한 소송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미첼 워렌 AIDS백신옹호연합 사무총장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낸 동결 관련 소송에서 "대법원 판결은 행정부가 의회의 예산 권한을 무시할 수 있음을 잠재로 시사한다"고 말했다.
로버츠의 '단일행정부' 이론...레이건 시절부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최근 몇 년간 대통령을 독특하게 강력한 인물로 선언하는 판결들을 작성해왔다. 2020년 판결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은 "전체 '행정권'은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속한다"고 썼다. 그는 또 대통령이 하급 공무원을 해고할 자유로운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암시했으며, 소비자금융보호국장을 해임하기 쉽게 만들었다.
지난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을 작성하며 트럼프와 다른 대통령들에게 공무 수행에 대한 광범위한 형사소추 면책특권을 부여했다. 로버츠는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과감하고 두려움 없이 수행하기 위해 그런 보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른 누구와도 달리 대통령은 정부의 한 부처이며, 헌법은 그에게 광범위한 권한과 의무를 부여한다"고 로버츠 대법원장은 썼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진보 진영을 대표해 격렬한 반대 의견을 냈다. "이제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됐다"고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개탄했다.
로버츠의 판결들은 단일행정부 이론과 일치한다. 주로 보수주의자들이 받아들이는 이 법 개념은 대통령이 의회나 법원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공무원을 해임할 권리를 포함해 행정부에 대한 단독이고 전체인 통제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레이건 백악관이 발전시켰으며, 당시 젊은 변호사였던 로버츠가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다. 이 이론은 이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역사 선례 없는 권한 확대" 경고
세실리아 왕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소송이사는 대법원이 긴급 안건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승소하기 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전통상 대법원은 긴급 결정에서 현상 유지를 선호했지만, 왕 이사는 대법원 보수진영이 트럼프의 정책이 진행되도록 현행 정책을 뒤집는 데 더 적극인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금지명령을 내릴 기준 중 하나인 정책 차단의 피해와 이익을 따지는 방식을 바꿨다고 왕 이사는 말했다. "그들은 원고들에게 닥친 심각한 피해를 무시했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반면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 시행에서 지연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압도인 우선권을 부여했다"고 왕 이사는 말했다.
앤드류 루달레비지 바우던대 교수는 트럼프의 꾸준한 권한 축적이 역사 선례에 반하기 때문에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과거 대통령 권한이 확대됐을 때는 거의 항상 상당히 합의된 국가 비상사태 때문이었다"며 "남북전쟁은 대통령 권한의 큰 증가를 가져왔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도 그랬다. 지금은 그에 상응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제프리 로젠은 최근 출간한 대통령 권한 관련 저서 '자유의 추구'에서 현 시대가 독특한 이유로 의회가 전통상 권한 확대를 시도하는 대통령에게 반발해왔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동안 특히 순응이었다고 지적했다.
"유순한 의회와 법원이 백악관의 행정권 집중을 허용하는 이 패턴이 계속된다면 복원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권력 균형이 바뀔 수 있다"고 로젠은 경고했다.
대법원은 5일 트럼프의 대부분 관세 부과의 합법성에 대한 변론을 시작으로, 오는 11월에는 90년 된 독립기관 관련 판례를 뒤집을지 검토하고, 내년 1월에는 트럼프가 경제에 대한 막대한 권한을 가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개편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판결은 내년 여름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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