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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필로폰 원료' 밀수출 폭증…아시아 마약 '쓰나미' 공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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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필로폰 원료' 밀수출 폭증…아시아 마약 '쓰나미' 공포 확산

"미얀마 군벌에 대규모 공급…2023년 압수량 236톤, 전년 대비 24% 급증"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사상 최대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 확산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 제조업체들이 필로폰의 주원료인 전구체 화학물질을 대규모로 미얀마 군벌 세력에게 밀수출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사상 최대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 확산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 제조업체들이 필로폰의 주원료인 전구체 화학물질을 대규모로 미얀마 군벌 세력에게 밀수출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사진=로이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사상 최대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 확산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는 중국 제조업체들이 필로폰의 주원료인 전구체 화학물질을 대규모로 미얀마 군벌 세력에게 밀수출하는 데서 비롯된다.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8(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2023년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압수된 필로폰 양은 236톤으로 기록을 경신했는데, 이는 직전 해보다 24%나 급증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중국발 원료 공급이 없었다면 이 같은 필로폰의 산업적 대량 생산은 불가능했다고 분석한다.

미얀마 샨주, 세계 최대 메스 생산 허브로 부상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필로폰 생산의 "주요" 근원지가 중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미얀마 동부 샨(Shan)주라고 밝힌다. 이 지역은 소수민족 반군과 군벌 세력의 통제 아래 있으며, 특히 미국이 마약 밀매 조직으로 지정한 와주 연합군(UWSA)이 가장 강력한 세력이다.

존 코인(John Coyne)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 국가안보 프로그램 국장은 중국의 산업 기반과 조직범죄가 없었다면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지는 필로폰의 산업적 생산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며 내전 상태에 돌입하자 마약 단속 노력이 약화하고, 공식 경제가 붕괴했다. 이로써 UWSA 및 중국 파트너에게는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UNODC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일부 지역에서 결정형 필로폰(‘아이스’)의 소매 가격은 2021년 이후 절반으로 떨어졌음에도 순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이는 공급 과잉을 나타내는 명확한 신호라는 주장이다.

중국 기업, 규제 피해 전구체 대량 밀수출


워싱턴포스트의 조사 보고서와 법 집행 문건에 따르면, 중국 제조업체들은 합성 마약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동남아시아의 무법 지역으로 대량 운송하고 있다. 미국 법 집행 기관 관계자는 펜타닐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질 판매로 미국이 제재하거나 기소한 일부 중국 기업이 미얀마에 필로폰 원료를 공급하는 업체와 '분명하고 구체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수사관들은 중국에서 수십 개의 허가받은 회사가 에페드린이나 슈도에페드린 등 필로폰 전구체 성분을 온라인 장터에서 공공연하게 거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 회사는 세관 규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포함한 통합적인 물류 지원까지 제공한다.
필로폰 대량 생산의 핵심은 전구체(Precursor Chemicals)의 대규모 유입이다. 전구체란 특정 화학 반응을 통해 다른 물질로 변환될 수 있는 화학 원료를 일컫는다. 필로폰의 경우 에페드린, 슈도에페드린 같은 성분이 전구체로 쓰인다. 이들 물질 자체는 합법적인 화학 공업이나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지만, 필로폰을 만드는 데 악용될 수 있다.

2020년 라오스에서 필로폰 전구체인 프로피오닐 클로라이드 72톤이 중국 국유기업의 자회사 제품으로 확인돼 압류된 사건이 있었다. 또한, 태국 당국이 2010년대에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을 규제하자, 제조법을 바꿔 비규제 물질에서 이들 전구체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태국 반마약청(ONCB)202410월 미얀마 국경 인근 창고를 급습해 톨루엔, 아세톤, 수산화나트륨 등 800톤의 화학물질을 압수했다. 이는 마약 완제품이 아닌 '원료'를 겨냥한 새로운 단속 노력의 하나다.

암호화폐와 불법 거래의 연관성


중국 화학 회사들이 불법 거래 대금으로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블록체인 정보 회사 TRM 랩스(TRM Labs)는 지난해 전구체 공급업체로 판단되는 120곳 이상의 중국 화학 회사를 확인했으며, 거의 모두가 암호화폐로 대금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이들 회사와 연관된 암호화폐 지갑에 대한 예치금은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에 600% 이상 증가했고, 2024년 첫 넉 달 동안에도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두 배로 늘었다. 2023년 이 암호화폐 지갑들이 받은 금액은 총 2600만 달러(379억 원)가 넘는다.

TRM 랩스는 펜타닐 전구체를 판매하는 공급업체 중 거의 3분의 2가 아시아로 가는 필로폰, 서유럽으로 가는 엑스터시 등 다른 마약 전구체도 광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로이스 아필리포아이(Alois Afilipoaie) TRM 수석 위협 분석가는 "이것은 펜타닐과 미국을 넘어선다"라며 "중국이 전 세계 불법 마약 위기의 진원지"라고 분석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심각한 피해 규모


미얀마 샨주 필로폰 생산 급증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호주의 필로폰 사용은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 21% 증가하여 유행병에 가까운 수준으로 치달았다. 호주 경찰은 2022년 기준으로 국내 '아이스'의 약 70%가 샨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보건복지부는 2024년 기준으로 불법 마약 사용자가 5년 사이에 60% 넘게 증가해 40만 명을 넘어섰다고 추정했다. 전국 수십 개의 하수 처리장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어 광범위한 사용을 시사한다.

미얀마 현지에서도 내전과 실업 속에 미얀마 젊은이들은 더 강력한 필로폰 알약이나 여러 마약을 섞은 '해피 워터' 같은 신종 마약의 주된 대상이 되었다. 샨주 관문인 타칠레익에서는 마약 판매가 공공연하며 과다 복용 사망자의 시신이 흔히 발견된다고 현지 주민들은 증언한다.

국제 협력의 한계와 중국의 소극적 대응


유엔(UN)과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의 압력으로 중국은 미얀마와 라오스 국경인 남서부 윈난성에서 마약 전구체 운송 통제를 강화했었다. 그러나 UN 수사관들은 육로를 통한 수출이 둔화되자 태국, 라오스 등 제3국을 통한 새로운 운송 경로가 확장됐다고 보고한다.

UN, 인터폴 등은 정부에 잠재적 마약 전구체가 수령국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더 자세한 정보를 요청하는 국제 사전수출통보(PEN)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중국은 그 화학 산업의 규모와 마약 전용 빈도에 비해 PEN 시스템의 '사용 수준이 낮다'고 동남아시아 법 집행 기관에 배포된 문건에 명시되어 있다. 중국 외교부는 자국이 해외 마약 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이전에 거부했으며, 전구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미국 법무부가 펜타닐 전구체를 판매한 혐의로 우한에 본사를 둔 후베이 아오크스 바이오-테크(Hubei Aoks Bio-Tech Co. Ltd.)의 지도부 4명을 기소하자 중국 당국이 이들을 체포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최근 의회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이 미국이 제재한 기업에 대해 면허 취소 등 조치를 해도 불법 운영은 종종 다른 회사로 빠르게 이전된다고 보고했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전구체를 밀매하는 사람들에 대한 중국 내 마약 관련 혐의 체포나 기소는 없었다"라고 국무부는 밝혔다.

한편 태국 반마약청의 프린 메카난다(Prin Mekanandha) 국장은 중국 당국에 화학 수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일은 '어려운'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태국은 작은 나라로 "미국 같지 않다"라며, 작은 나라가 초강대국에 요구하지 못한다는 처지를 이야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