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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실리콘밸리, 금단의 '맞춤형 아기' 추진…올트먼·암스트롱 '비밀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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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실리콘밸리, 금단의 '맞춤형 아기' 추진…올트먼·암스트롱 '비밀 후원'

질병 예방 명분 내세웠지만…'IQ·외모' 맞춤형 아기 탄생 우려
美 법망 피해 해외 실험 모색…'배아 선별' 넘어 '배아 편집' 상업화 '성큼'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급 억만장자들이 '유전자 조작 아기' 출산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어 세계적인 윤리적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은 유전공학을 이용해 유전병 예방뿐 아니라 IQ, 키, 눈 색깔 등 선호하는 유전 형질까지 개량한 아기를 만들려는 시도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샌프란시스코의 신생기업 '프리벤티브(Preventive)'는 유전병 예방을 명분으로 유전자가 편집된 배아를 통해 아기를 탄생시키려는, 사실상 '생물학적 최초'의 시도를 준비 중이다. 2025년 5월 설립한 이 회사는 그간 비공개로 연구 활동을 진행해 왔으며, 최근 3000만 달러(약 43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공개했다. 이 회사 경영진은 최근 몇 달간 유전 질환을 가진 한 부부가 이 프로젝트 참여에 관심을 보였다고 사석에서 밝혔다.

현재 출생 후 치료 목적으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나, 정자·난자·배아 단계에서의 유전자 편집은 훨씬 더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전 세계 과학계가 윤리적, 과학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전 지구적 일시 중지'를 촉구했다.

특히 아기 출산을 목적으로 한 배아 유전자 편집은 미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배아 유전자 편집의 인간 대상 임상시험 신청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프리벤티브는 아랍에미리트(UAE) 등 배아 편집이 허용되는 해외 연구 및 실험 장소를 물색해 왔다고 WSJ이 전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 기술이 안전성을 담보하기에 너무 예측 불가능하며, 정부의 개입 없이 민간 기업이 '인간 실험'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각에서는 '우생학의 망령'을 제기하기도 한다.

편집된 배아에서 아기가 태어난 유일한 선례는 2018년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사건뿐이다. 그는 HIV 면역을 갖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아기 3명을 출산시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불법 의료 행위로 중국에서 3년형을 받았다.

프리벤티브는 실리콘밸리 유력 인사들의 자금 지원으로 생식 유전 기술의 상업화를 추진하는 선봉에 서 있다. 이들의 명분은 '유전병 없는 아기'지만, 일각에서는 부모가 IQ, 키, 눈 색깔 등 선호하는 특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 억만장자인 암스트롱은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유전자 편집으로 심장 질환에 덜 걸리고, 콜레스테롤이 낮으며,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 뼈가 튼튼한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그는 이 분야를 적극 지원하며 실리콘밸리 안에서 유전자 편집 전문가들과 비공개 모임을 열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과학계가 반대하기 전에 '비밀리에 작업'하여 건강한 유전자 조작 아기를 세상에 공개해 '충격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전략을 제안했다고 한다. 다만 암스트롱 측은 본인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WSJ의 취재가 시작되자, 프리벤티브는 웹사이트를 통해 3000만 달러(약 430억 원)의 투자 유치 사실을 공개했다. 회사 측은 현재까지 임상 시험 단계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성명에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안전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인간 대상 임상시험으로 나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프리벤티브의 루카스 해링턴 CEO는 "특정 부부와 배아 편집을 진행 중이라는 것은 완전히 거짓"이라며 "안전성을 입증한 후에야 임상에 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배아 편집 임상시험 신청 검토를 금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미국 밖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프리벤티브는 델라웨어주 공익법인(public-benefit corporation)으로 등록해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기업 형태를 갖췄다.

이번 투자를 주도한 올트먼의 남편 올리버 멀헤린은 성명을 통해 "사람들이 질병을 피하도록 돕는 연구에 관심이 있어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학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 혁신 유전체학 연구소의 표도르 우르노프 소장은 "이들은 유전병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짓말을 하거나 망상에 빠져 있거나, 둘 다이다. 이들은 '아기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과학계에서는 아직 유전자 간 상호작용과 전체 유전체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다는 점, 편집 과정 중 의도하지 않은 유전자 변형과 돌연변이 위험, 장기적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문제를 지적한다. 배아 유전자의 모든 편집, 변경, 삭제가 의도치 않은 실수를 포함해 다음 세대에 그대로 유전될 수 있다.

'배아 선별'은 이미 현실…'유전자 최적화' 상업화


한편, 배아 편집과는 별도로, 유전자의 특정 형질 발현 확률을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다인자성 스크리닝(polygenic screening)'이라는 유전자 검사 기술이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상업화가 한창이다.

오키드(Orchid), 제노믹 프리딕션(Genomic Prediction), 뉴클리어스 제노믹스(Nucleus Genomics), 헤라사이트(Herasight) 등의 스타트업이 이미 이러한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암스트롱, 벤처 캐피털리스트 피터 틸, 레딧 공동 창업자 알렉시스 오해니언 등이 이들에게 투자했다. 이들은 부모가 체외수정(IVF) 배아의 질병 위험과 IQ, 키 등 다양한 형질에 대한 유전적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선호하는 배아를 선택하도록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부모들은 포털에 접속해 'IQ 130으로 예상하는 배아', '조현병 발병 확률 1.5%인 배아' 혹은 '형제자매보다 불안을 겪을 확률이 14% 더 높은 배아' 등의 정보를 담은 차트와 그래프를 볼 수 있다. 일부 업체는 이미 수만 개의 배아를 분석했으며, 비용은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 수준이다.

미국 의학 유전학 유전체학회(ACMG)는 지난해 "다인자성 스크리닝은 입증된 임상적 이점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버지니아 대학교의 행동 유전학자 에릭 터크하이머는 이를 "기업형 우생학"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유전학자와 윤리학자들은 기업들이 안전성과 사회적 합의 없이 인간 유전자 조작을 시도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기업형 우생학'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오키드의 누르 시디키 창업자(31)는 "유전적 우월성이 아니라 질병 위험 완화가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섹스는 재미로 하는 것, 배아 스크리닝은 아기를 위한 것"이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뉴클리어스의 키안 사데기 창업자(25)는 이 기술을 '유전자 최적화 소프트웨어'라 칭하며 "부모가 미래 자녀를 위해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머스크도 사용…엘리트층 파고든 '맞춤형 유혹'


이러한 다인자성 스크리닝 기술은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다. 샘 올트먼과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저명인사들이 자녀를 위해 이 기술을 사용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특히 머스크는 그의 뇌신경과학 회사 뉴럴링크의 임원인 시본 질리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의 배아를 선택하기 위해 '오키드'의 스크리닝을 이용했다고 한다.

일부 업체는 노골적으로 '우월한 특성'을 마케팅한다. 헤라사이트는 투자자들에게 "IQ를 포함해 가장 좋은 예측 특성을 가진 아이를 갖도록 부모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홍보했다. 이 회사는 초기 고객 80명 중에는 "잘 알려진 억만장자들"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사내 철학자'인 조너선 애너몰리는 자발적 우생학의 옹호자다. 그는 지난 9월 한 행사에서 "몇 세대만 지나면 '유전적으로 향상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현저한 지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불평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자 조작 아기'를 추진하는 프리벤티브의 해링턴 CEO는 2020년 노벨상을 받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구자 제니퍼 다우드나의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스승인 다우드나는 프리벤티브의 출범에 대해 "해링턴이 크리스퍼 기술이 (질병) 예방을 위해 '안전하게 사용할' 만큼 성숙했는지 탐구하는 데 필요한 엄격한 과학적 기준과 투명성을 가져오고 있다"는 원론적인 생각을 밝혔다. 그는 "과학계가 책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만드는 시도는 논란이 심하며, 프리벤티브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기술과 안전성을 입증하기 전까지 사회적·법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투자자들이 상당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이 분야 기술 발전과 상용화 추이는 국제 생명윤리 및 법률 논의의 주요한 관심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