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트럼프발 '미국 우선주의', 아시아 경제 패권 中 시진핑에 넘기나?

글로벌이코노믹

트럼프발 '미국 우선주의', 아시아 경제 패권 中 시진핑에 넘기나?

WP 분석, 동남아시아 교역량 中이 美의 2배…RCEP 활용, 중국發 '대나무 외교' 확산
도널드 크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크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하고 모순 가득한 외교 정책이 국제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이 동맹국들에 관세로 압박하는 사이 중국이 다자주의와 개방 무역을 내세우며 역내 경제 주도권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0(현지시각) '트럼프의 일관성 없는 외교 정책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좌절스러운 역할 역전이 미국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외교의 모순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의 역할 변화를 심층 분석했다.

모순된 트럼프 외교, 국제사회에 혼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평화 중재와 무력시위가 공존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며, 이처럼 모순된 접근 방식이 국제사회에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채택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이름표마저 뉴욕타임스(NYT)의 데이비드 생어가 2016년에 제안한 것이며, 그는 이 기조를 충실히 따르지도 않았다고 WP는 꼬집었다. 실제로 공화당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Marjorie Taylor Greene) 하원의원은 최근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는 세계 순방과 외국 지도자들과의 회담은 미국 우선주의가 아니다. 국내 정책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종종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왜곡된 정보에 따라 즉흥적으로 내려진다고 WP는 분석한다. 예컨대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백인 집단 학살'과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며 아프리카너를 사실상 유일하게 인정하는 난민 집단으로 꼽았고, 나이지리아 기독교도 살해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을 통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완전히 소탕하겠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극도의 무력 사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소셜미디어에 "다른 나라의 실험 프로그램 때문에 국방부에 우리의 핵무기를 동등한 수준으로 실험할 것을 지시했다. 그 과정이 즉시 시작될 것이다"라고 써 전문가들을 당혹케 했다. 21세기에 북한 외에는 핵무기 공개 실험을 한 나라가 없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한 발언은 러시아의 핵 실험 위협으로 이어지는 등 역효과를 낳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한 행보는 외교 전문가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으나, 그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불협화음조차도 트럼프 대통령을 돋보이게 하는 '보너스'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고 WP는 설명했다.

'패권 공백' 속 中, 동남아 교역 우위로 영향력 확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미국이 동맹국들에 관세 카드를 휘두르며 시장 개방과 투자를 압박하는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자주의와 개방 무역을 강조하는 신뢰할 수 있는 경제 협력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역할을 교체하고 있다고 WP는 평가한다.
WP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교역 규모는 9820억 달러(1438조 원) 로 이 지역과 미국의 교역 규모의 약 두 배에 이른다. 중국은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은 이미 지역 산업과 공급망의 지배적인 주체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전기차 시장에서는 인도네시아 내 판매된 전기차의 90%가 중국산이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도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일본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화웨이, 샤오미, 오포 같은 중국 브랜드들이 미국의 아이폰보다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이후 이를 대체할 포괄적인 역내 무역협정을 제시하지 못하는 공백을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으로 채웠다. 2022년에 발효된 RCEP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가운데 10개국과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해 총 15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 신뢰도 하락, 아시아 국가들 '대나무 외교' 채택


중국의 경제적 발자국이 커지면서 아시아 내 많은 국가에서 미국에 견줘 중국을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여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인도네시아인들의 65%가 중국에 대해 호의적인 견해를 보인 반면,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는 48%에 그쳤다. 국제 문제에 있어서 시진핑 주석이 올바른 일을 할 것이라고 신뢰하는 응답자는 53%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4%에 머물렀다.

물론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남중국해에서의 공세적인 태도로 중국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으며,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로 인해 여전히 미국이 역내 안보의 더 나은 보장자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해외 원조가 삭감되면서 미국의 신뢰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WP는 진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불규칙적이고 쇠퇴하는 미국과 안정적이고 떠오르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 를 택하는 모습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들 국가는 워싱턴이나 베이징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람이 부는 대로 유연하게 몸을 굽히는 전략을 취한다. WP"미국이 아시아에서의 우위를 되찾으려면 포괄적인 무역협정, 인프라 금융, 그리고 더 예측 가능한 외교 정책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워싱턴은 역내 안보를 보호하는 역할에만 머물고 경제적 보상은 베이징이 거두게 될 것"이라는 시장의 분석을 인용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