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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해커, 호주 6조원대 장갑차 설계도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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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해커, 호주 6조원대 장갑차 설계도 유출

이스라엘 방산업체 17곳 해킹해 정보 탈취…엘빗·라파엘 1년 반 감시, 회의까지 녹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수출하는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미지 확대보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수출하는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수출하는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의 기밀 설계도가 이란 연계 해커 조직에 유출됐다는 보도가 또 나왔다.

이슬라엘의 주요 일간지인 예루살렘 포스트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하마스를 지지하는 해킹 그룹이 호주의 70억 호주달러(약 6조7600억 원) 규모 레드백 프로젝트의 3D 렌더링과 기술 세부사항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해킹 그룹 '사이버 투판(Cyber Toufan)'은 이스라엘 공급망 업체 MAYA 기술에 침투한 뒤 17개 방산기업에 접근해 관련 정보를 빼냈다. 유출된 자료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호주 법인 한화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가 호주에 납품하는 레드백 장갑차에 탑재되는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스 포탑과 각종 방호 시스템 정보도 포함됐다.

1년 반 동안 네트워크 장악…회의 녹음까지


사이버 투판은 지난달 22일부터 36개 군사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조직은 "이스라엘 방산 엔지니어링 핵심부에 침투했다"면서 "MAYA를 통해 엘빗과 라파엘의 전화기·프린터·라우터·카메라에 접근했고, 1년 넘게 회의 내용을 음성과 영상으로 녹화했다"고 밝혔다.

해킹 조직은 "수십 테라바이트의 개인 데이터, 관리 및 기술 문서, 음성 통화, 영상 녹화물을 확보했다"면서 "일부는 로켓을 설계했고, 다른 이들은 무인기와 탱크 부품 제작 및 시스템 프로그래밍에 참여했으며, 심지어 전장으로 운송하는 일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사이버보안업체 OP 이노베이트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사이버 투판이 "이스라엘 경제와 안보에 관련된 기관을 명확하게 겨냥한다"면서 "정부 계약업체, 기술 기업, 인프라 제공업체,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국제 기업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분석했다.

레드백 탑재 이스라엘 방호 시스템 정보 포함


호주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호주 법인 한화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는 지난해 12월 레드백 129대에 대해 24억 호주달러(약 2조3100억 원) 계약을 체결했다. 레드백에는 엘빗 시스템스가 공급하는 구경 30㎜ 주포를 탑재한 포탑과 COAPS 사수 조준경, 센서 시스템이 장착된다. 또한 '아이언 피스트' 능동방어시스템과 '아이언 비전' 첨단 상황인식 헬멧 장착형 디스플레이 시스템, 레이저 경보 시스템도 탑재된다.

유출된 자료에는 수백 장의 직원 사진과 함께 헬멧 장착형 디스플레이 시스템, 라파엘의 아이언 빔 레이저 방어 시스템, 아이스 브레이커 미사일, 스파이크 NLOS(비가시선) 대전차 미사일, 엘빗의 헤르메스 900 보관 컨테이너, ROEM 자주포, 크로스보우 포탑형 박격포 시스템 등 수십 개 프로젝트 정보가 포함됐다.
호주 현지 언론 디오스트레일리안은 헬멧 장착형 디스플레이 시스템 설계도가 유출됐으며, 호주 국방군이 라파엘의 스파이크 NLOS 대전차 미사일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도 노출됐다고 전했다.

호주, 가자전쟁 비판하면서도 이스라엘 무기 도입


호주는 이스라엘의 가자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호주는 레드백 장갑차에 이스라엘산 무기 시스템을 대거 탑재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이스라엘에서 첨단 무기를 사들이는 모순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팻 콘로이 국방산업장관은 지난주 인도태평양 해양박람회에서 "호주 국방군을 위해 최고 장비를 확보하는 데 사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군사적으로 가장 우수한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호주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지는 않지만, 반대로 이스라엘에서 무기를 사들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호주 정부가 입장을 바꾸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지 언론 더나이틀리에 따르면 호주는 최근 이스라엘로 보내는 물자에 새로운 제한 조치를 조용히 시행하기 시작했다.

국방수출통제(DEC)가 '1956년 관세(수출금지) 규정'에 따라 새로운 조건을 추가해 허가를 받은 업체라도 '승인된 물품'을 이스라엘로 보낼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는 호주가 이스라엘의 가자전쟁을 비판하면서 무기 관련 물자의 이스라엘 수출을 막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국방부는 국가 안보와 상업 기밀을 이유로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