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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두개골 깰 위력" 경고하자 해고…57조 '로봇 대어' 피규어 AI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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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두개골 깰 위력" 경고하자 해고…57조 '로봇 대어' 피규어 AI의 민낯

前 안전책임자 소송 제기…"냉장고 문 찢는 오작동, 경영진이 묵살
"투자 유치 직후 안전조직 축소 의혹…사측 "저성과자 해고" 일축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엔비디아(Nvidia), 마이크로소프트(MS), 제프 베이조스 등 글로벌 '큰손'들의 투자를 쓸어 담으며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선두 주자로 부상한 '피규어 AI(Figure AI)'가 도덕적 치명상을 입을 위기에 처했다. 로봇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내부 경고를 묵살하고, 이를 제기한 안전 책임자를 '보복 해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하자마자 약속했던 안전 강화 계획을 폐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접수된 소장에 따르면, 피규어 AI의 전 제품 안전 책임자 로버트 그룬델(Robert Gruendel)은 회사를 상대로 부당 해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룬델은 자신이 로봇의 위험성을 경영진에게 경고한 직후인 9월 해고됐으며, 이는 캘리포니아 주법이 보호하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에 대한 명백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함께 배심원 재판을 요구하고 있다.

"강철 문 찢겨"…섬뜩한 오작동 경고


소송의 핵심 쟁점은 피규어 AI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물리적 통제 불능 가능성이다. 그룬델은 브렛 애드콕(Brett Adcock) CEO와 카일 에델버그(Kyle Edelberg) 수석 엔지니어에게 로봇의 물리력이 "인간의 두개골을 파열시킬(fracture a human skull) 정도로 강력하다"고 직언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우려가 아니었다. 소장에는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 강철 소재의 냉장고 문을 4분의 1인치(약 0.63cm) 깊이로 찢어버린 사고 사례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해야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통제를 벗어나 강철을 훼손할 정도의 괴력을 발휘한다면, 이는 인간 작업자에게 즉각적인 살상 위험(lethal capabilities)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회사의 대응은 '안전 조치'가 아닌 '입막음'이었다. 그룬델은 "경영진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문서화된 형태로 안전 문제를 제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측이 안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obligations)가 아닌, 사업의 걸림돌(obstacles)로 치부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투자금 꽂히자 '안전 로드맵' 폐기?


이번 소송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투자자 기만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피규어 AI는 파크웨이 벤처 캐피털이 주도한 최근 펀딩 라운드에서 기업가치 390억 달러(약 57조 원)를 인정받았다. 2024년 초 엔비디아 등이 참여했을 당시보다 기업가치가 15배나 폭등한 수치다.

그룬델 측은 회사가 자금 확보를 위해 안전 로드맵을 '미끼'로 썼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그는 잠재적 투자자 두 곳 앞에서 '안전 로드맵'을 발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해당 투자자들은 이후 실제로 자금을 집행했다. 그러나 투자가 확정된 바로 그달, 경영진은 투자 결정의 핵심 요인이었던 제품 안전 계획을 '무력화(gutted)'하거나 등급을 강등(downgrade)시켰다.

그룬델은 당시 경영진에게 "이러한 행위는 사기(fraudulent)로 해석될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고 측 변호인인 로버트 오팅어는 CNBC를 통해 "제품 출시를 서두르는 성급한 접근 방식이 대중에게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휴머노이드 로봇 안전과 관련된 최초의 내부고발 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위 주장" 반박 속 로봇 패권경쟁 '찬물'


피규어 AI 측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회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그룬델은 저조한 업무 성과 때문에 해고된 것"이라며 내부고발 보복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또한 "그의 주장은 거짓이며 법정에서 철저히 반박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은 해고 당시 '사업 방향의 변화'라는 모호한 사유를 댔던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 보스턴 다이내믹스,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 등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던 피규어 AI는 이번 소송으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모건스탠리가 2050년 5조 달러(약 7360조 원) 규모로 성장을 예견한 로봇 시장에서, 안전성보다 속도와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하는 '빅테크의 그늘'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