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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니 -95% 휴지조각"... 나스닥 덮친 '아시아 초소형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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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니 -95% 휴지조각"... 나스닥 덮친 '아시아 초소형주' 공포

"수익률 700%" 유혹 뒤엔... 중국·동남아 '유령 주식'의 배신
카리브해 거친 우회 상장 급증... 왓츠앱 리딩방이 '개미 지옥'으로
美 당국 "상장 규정 강화"... 2025년 '나스닥 폰지' 주의보 발령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미국 나스닥 시장에 기습 상장한 뒤, 뚜렷한 이유 없이 주가를 폭등시키고 순식간에 급락시키는 일명 ‘펌프 앤드 덤프(Pump and Dump)’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미국 나스닥 시장에 기습 상장한 뒤, 뚜렷한 이유 없이 주가를 폭등시키고 순식간에 급락시키는 일명 ‘펌프 앤드 덤프(Pump and Dump)’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지=GPT4o
카리브해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두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미국 나스닥 시장에 기습 상장한 뒤, 뚜렷한 이유 없이 주가를 폭등시키고 순식간에 급락시키는 일명 펌프 앤드 덤프(Pump and Dump)’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배런스(Barron’s)는 최근 실체가 불분명한 해외 초소형주들이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를 위협하는 개미 무덤이 되고 있다고 집중 조명했다.

실적 없는 700% 폭등의 미스터리... ‘피튼 홀딩스사태


배런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 헬스케어 기업인 피튼 홀딩스(Pheton Holdings)’는 지난해 9월 기업공개(IPO) 이후 특별한 호재 없이 주가가 700%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 728일에는 주당 30.96달러(45500)로 마감하며 시가총액이 2억 달러(2940억 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실적은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정규직 직원은 10명에 불과했고, 연간 매출은 448196달러(65900만 원)에 그쳤다. 2022년 이후 수익을 낸 적도 없었다.

거품은 순식간에 꺼졌다. 729일 하루 만에 주가가 95% 폭락했고, 다음 날 33%가 추가로 떨어졌다. 지난 8월 이후 주가는 1달러 밑으로 추락해 현재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SNS 리딩방의 유혹... “길리어드가 지분 투자허위 정보 유포


이러한 주가 급등락 배경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조직적인 시세 조조작 세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런스가 입수한 왓츠앱(WhatsApp) 채팅 로그를 보면, 시애틀 지역 투자 자문사를 사칭한 한 그룹이 피튼의 주가 폭락 전까지 투자를 부추긴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대화방에서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피튼 지분 30%를 매입하고 이사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출처 불명의 발표 자료가 공유됐다. "건강에 투자하여 부유한 삶을 누리라"는 문구로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그러나 피튼 측 대변인은 배런스와 인터뷰에서 "왓츠앱 등 플랫폼에서 이뤄진 홍보 활동을 알지 못했으며 승인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길리어드 측 역시 피튼과 어떠한 사업 관계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싱가포르 기업인 '스마트 디지털 테크놀로지 그룹' 역시 유사한 사례다. 지난 5월 나스닥에 상장된 이 주식은 왓츠앱 리딩방에서 "두 달 안에 45~55달러(6~8만 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지난 92513.61달러로 마감한 뒤 다음 날 86% 폭락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후 "잠재적 조작 가능성"을 이유로 해당 종목의 거래를 정지시켰다.

통계로 본 초소형주 공습’... 2025년 상장 규모 역대 최대


제이 리터(Jay Ritter) 플로리다 대학교 금융학 교수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중국이나 홍콩에 기반을 둔 490개 기업이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에 상장했다. 특히 이 중 29%2023년 이후 상장했으며, 2025년은 상장 규모 면에서 이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주목할 점은 상장 기업의 규모가 급격히 작아졌다는 것이다. 2001년부터 2022년까지 공모 금액이 1000만 달러(147억 원) 미만인 기업은 전체의 6%에 불과했으나, 2023년 이후에는 이 비중이 75%를 넘어섰다. 훠궈 식당, 이벤트 기획사, 무명 컨설팅 업체 등 실체가 불분명한 초소형 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앤젤로 보차니스(Angelo Bochanis) 르네상스 캐피털 연구원은 "상장 첫날 주가가 두세 배 뛰는 사례가 많지만, 이러한 급등세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실제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2025NYSE와 나스닥에서 발생한 일일 최대 하락률 상위 20개 종목 중 8개가 2023년 이후 상장한 외국 기업이었다.

복잡한 지배구조와 규제 당국의 대응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이러한 위험 종목을 식별하기 위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신호로 낮은 유통 주식 비율복잡한 지배구조를 꼽는다.

피튼의 경우 전체 주식의 17%만을 공모했다. 유통 물량이 적으면 적은 거래량으로도 주가 변동성이 커져 시세 조작에 취약하다. 또한, 카리브해 조세회피처를 겹겹이 이용한 지배구조도 특징이다. 피튼의 투자설명서를 보면 케이맨 제도 법인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법인 → 홍콩 법인 → 중국 지주사 → 베이징 운영사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직원 10명 규모의 기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형태다.

미 규제 당국도 뒤늦게 칼을 빼 들었다. 나스닥은 지난 94SEC에 상장 규정 강화안을 제출했다. 중국 등 제한된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기업에 대해 ▲최소 공모 금액 2500만 달러(368억 원) 설정 ▲모든 신규 상장사의 일반 공모주(Public Float) 가치 1500만 달러 (220억 원)이상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SEC의 승인 절차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리터 교수는 "기관 투자자들은 이러한 주식을 피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단기 고수익을 약속하는 말에 개인 투자자들이 유혹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서학개미, “나스닥 간판만 믿다간 낭패주의해야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서학개미)들은 나스닥 상장사라는 간판이 주는 신뢰감 때문에 실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 시장 내에서도 규제 사각지대를 노린 무늬만 상장사가 급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초소형주(Micro-cap)’ 투자는 정보 비대칭의 위험이 크다. 월가 전문가들은 시가총액 3억 달러(4400억 원) 미만의 초소형주는 기관 투자자의 분석 리포트가 전무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국내 증권사 리포트 역시 대형 기술주(Big Tech)에 편중되어 있어,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SNS나 불법 리딩방의 찌라시(사설 정보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특히, ‘VIE(가변이익실체)’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업들은 대부분 케이맨 제도 등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가 중국 내 실제 운영 기업과 계약을 맺는 VIE 구조를 취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는 실제 운영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미국 상장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가 중국 내 자산에 대해 법적 권리를 행사하기 매우 어렵다"고 경고한다.

도한 투자시에 유동성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일 거래량이 적은 주식은 매수보다 매도가 훨씬 어렵다. 앤젤로 보차니스 연구원의 지적처럼 상장 초기 급등세에 현혹되어 추격 매수할 경우, 세력이 물량을 떠넘기고 빠져나갈 때 거래량 부족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문가들은 "나스닥에 상장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투자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기업설명서(Prospectus)에서 지배구조와 매출처, 직원 수를 직접 확인하고, 왓츠앱이나 텔레그램 등 비공식 채널의 정보는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