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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해 뜰 시간 너무 늦다”…말레이시아 시간대 논쟁, 40년 만에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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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해 뜰 시간 너무 늦다”…말레이시아 시간대 논쟁, 40년 만에 재점화

텡쿠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 장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텡쿠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 장관. 사진=로이터

말레이시아 반도 서부 지역이 ‘잘못된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오랜 주장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장관의 새벽 조깅 인증 글을 계기로 수면과 건강, 교육, 경제 효율성 등 다양한 논점이 얽힌 시간대 조정 논의가 재점화됐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가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사바에선 새벽 6시부터 뛸 수 있어요”…조깅 글이 쏘아올린 작은 공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의 텡쿠 자프룰 아지즈 장관은 최근 사바주의 주도 코타키나발루를 방문한 뒤 “이곳은 해가 일찍 떠서 아침 6시에 조깅하고도 8시 30분 일정에 여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X에 올렸다. 이 글은 의도와 달리 반도 말레이시아의 ‘해 뜨는 시간이 너무 늦다’는 불만에 불을 지폈다.
말레이시아 반도 지역은 지난 1982년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의 지시에 따라 기존보다 30분 앞당긴 GMT+8 시간대를 사용하게 됐다. 동말레이시아(사바·사라왁)와 시간을 통일해 국가 통합과 현대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말레이 반도 대부분 지역에선 해가 오전 7시께 떠 학교나 출근 시간대에는 어두운 환경에서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잦고 일몰도 이르게 찾아온다.

◇ “아이들 등교 시간엔 아직 어두워”…불편한 현실


일부 학부모들은 오전 7시 30분 등교에 맞춰 준비하려면 날이 밝기 전부터 움직여야 해 자녀들이 아침 식사를 거르거나 불안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반면 동말레이시아는 상대적으로 일출이 빨라 같은 시각에 이미 해가 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불균형은 단순 불편을 넘어 일조량 부족에 따른 건강 저해, 일상 리듬 붕괴 등을 초래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한 소비자는 도이체벨레와 인터뷰에서 “필리핀 마닐라에 출장을 갔을 때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 “1시간이 그렇게 중요한가”…전문가들은 신중론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간대 조정이 건강에 미치는 실질적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이다. 말레이시아국립대학의 임상심리학자 마하디르 아흐마드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지 않는 수면 루틴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1시간 차이로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영양사 누룰 아킬라 하산은 “시간대가 더 정확한 나라들이 오히려 건강 지표가 나쁜 경우도 있다”며 식습관이나 운동, 노동시간 같은 사회적 요인이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 “동남아 전체 GMT+8로 통일하자”는 주장도 병행 제기


이번 논쟁은 단지 ‘해가 늦게 뜬다’는 건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의 압둘 와히드 오마르 이사장은 올해 초 “동남아시아 국가 전체가 GMT+8로 시간대를 통일해야 한다”며 중국·홍콩·대만과 보조를 맞춘 경제 블록 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이미 GMT+8을 채택 중이며 1995년 싱가포르 고촉통 총리가 처음 제안한 이래 2006년과 2015년에도 관련 논의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의에서 이뤄진 바 있다.

다만 현재 GMT+7에 속한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GMT+6:30의 미얀마, 세 개 시간대가 혼재된 인도네시아 등은 조정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어 단일 시간대 도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