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인텔, AI 반도체 '심장' 한국에 맡긴다…앰코 송도 공장에 핵심 패키징 첫 아웃소싱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인텔, AI 반도체 '심장' 한국에 맡긴다…앰코 송도 공장에 핵심 패키징 첫 아웃소싱

2.5D 패키징 기술 'EMIB' 외부 위탁 최초 사례…엔비디아 추격 위한 공급망 다변화 포석
앰코, 송도에 2700억 투입해 생산·테스트 거점 확대…韓 소부장 생태계와 밀착 협력
미국 인텔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의 핵심 패키징 기술인 'EMIB' 공정을 외부 파트너인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에 위탁한다. 앰코는 이에 발맞춰 약 2700억 원을 투입해 인천 송도 사업장의 생산 및 테스트 시설을 대폭 확장한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인텔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의 핵심 패키징 기술인 'EMIB' 공정을 외부 파트너인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에 위탁한다. 앰코는 이에 발맞춰 약 2700억 원을 투입해 인천 송도 사업장의 생산 및 테스트 시설을 대폭 확장한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미국 반도체 굴기(崛己)의 상징인 인텔이 자사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공정인 '첨단 패키징'을 한국에 맡긴다. 인텔이 자체 공장이 아닌 외부 파트너에게 이 핵심 공정을 위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급증하는 AI 칩 수요에 대응하고, 엔비디아가 장악한 AI 가속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의 성숙한 반도체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으로 풀이된다.

인텔의 결단, '메이드 인 코리아' 패키징 낙점


3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아시아와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인천 송도에 위치한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이하 앰코코리아)의 K5 사업장에 자사의 독자적인 첨단 패키징 기술인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 설비를 반입했다. 이는 지난 4월 양사가 체결한 기술 협력 파트너십의 후속 조치로, 인텔의 AI 반도체 물량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양산될 채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인텔은 미국 본토와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자체 팹(Fab)에서만 EMIB 공정을 수행해왔다. 기술 보안과 공정 난이도 때문이다. 그러나 AI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고객사와 자사 칩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적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텔이 앰코코리아를 낙점한 배경으로 '검증된 기술력'과 '한국의 생태계'를 꼽는다. 앰코 송도 사업장은 이미 북미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첨단 패키징 물량을 소화하며 기술적 신뢰도를 쌓아왔다. 여기에 한국이 보유한 탄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과 우수한 엔지니어링 인재 풀(Pool)이 인텔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엔비디아 잡을 무기 'EMIB', 한국서 고도화


이번에 한국으로 반입된 EMIB 기술은 인텔이 엔비디아 추격을 위해 내세운 핵심 무기다. 이는 2.5D 패키징 기술의 일종으로, 여러 개의 반도체 다이(Die)를 연결하기 위해 실리콘 브리지(Silicon Bridge)를 기판 내부에 매립하는 방식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주로 사용되는 실리콘 인터포저(Interposer) 방식과 비교할 때, EMIB는 비용 효율성이 높고 확장성(Scalability)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포저는 면적의 한계가 있고 가격이 비싼 반면, EMIB는 필요한 부분에만 브리지를 연결하면 되기 때문에 대면적 칩 제조에 유리하다.

인텔은 단순한 기술 이전을 넘어 차세대 공정 로드맵까지 앰코코리아와 공유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2026년부터 성능이 대폭 향상된 'EMIB-T'의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EMIB-T는 실리콘 관통 전극(TSV)을 적용해 수직 신호 경로를 생성, 데이터 전송 속도와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차세대 아키텍처다. 인텔이 고성능 컴퓨팅(HPC) 및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첨단 패키징 기술을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앰코, 2700억 투자로 화답…정부 "총력 지원"

인텔의 물량 수주에 발맞춰 앰코테크놀로지 역시 한국 내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앰코는 송도 사업장의 생산 및 테스트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2700억 원(약 2억 달러)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지난달 19일 앰코코리아는 송도 사업장에서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 등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규 반도체 테스트 동 기공식을 열었다. 앰코는 이번 증설을 통해 3개의 신규 생산 라인과 추가 장비를 도입, 웨이퍼 및 패키지 테스트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과거 한국 기업인 아남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앰코는 1990년대 미국계 패키징 및 테스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한국을 핵심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다. 앰코 측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한국 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과의 협력을 더욱 심화해 한국의 AI 반도체 생태계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앰코는 송도 프로젝트 완료 후 광주 사업장에 대한 추가 투자도 검토 중이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 정부 역시 인텔과 앰코의 협력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10월 APEC 2024 기간 중 열린 '글로벌 투자자 파트너십' 행사에서 이번 투자 계획이 처음 공개된 이후, 정부는 신속한 행정 지원을 약속했다. 강감찬 실장은 "정부는 현금 지원 확대, 부지 및 세제 혜택 강화, 규제 개선 등을 통해 발표된 투자가 지연 없이 이행되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앰코의 이번 투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한국행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텔의 이번 아웃소싱 결정은 단순한 하청 생산을 넘어, 한국이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의 필수적인 파트너로 격상되었음을 시사한다. 메모리 강국을 넘어 '첨단 패키징 허브'로 도약하려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인텔과 앰코의 밀월은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