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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IFV 수주전 ‘승부수’…“현지화 80%·2030년 전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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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IFV 수주전 ‘승부수’…“현지화 80%·2030년 전력화”

獨 라인메탈 제치고 ‘EU 지상무기 허브’ 정조준…담보비차 생산기지 구축
K9·레드백 ‘심장’ 공유해 유지비 절감…“기술 주권 이양” 파격 제안
레드백 보병 전투 차량.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미지 확대보기
레드백 보병 전투 차량.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 보병전투장갑차(IFV) 도입 사업에서 현지화 80%’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쟁사인 독일 라인메탈을 압도하는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비율을 앞세워,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루마니아를 유럽 방산의 핵심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디펜스 인더스트리 유럽은 지난 9(현지시각)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 IFV 프로그램에 80% 현지생산을 확약하며, 라인메탈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제안은 유럽연합(EU)의 안보 행동(SAFE) 규정이 권고하는 역내 생산 비중 65%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동유럽 정세를 고려해 2030년까지 차량 전량을 인도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이는 루마니아 정부의 시급한 전력화 요구와 자국 방위산업 육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정확히 타격한 전략으로 보인다.

EU 기준 넘어선 80% 국산화… 무늬만 현지생산거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시한 비전의 핵심은 진정한 기술 주권 이전이다. 경쟁사인 독일 라인메탈은 헝가리 공장을 활용한 우회 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어 루마니아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화는 루마니아 담보비차(Dambovița) 지역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짓고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를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피터 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법인장은 우리는 루마니아를 단순한 구매처가 아닌 지상 무기체계 제조의 중심지로 발전시킬 준비를 마쳤다“80% 현지화는 루마니아의 손으로, 루마니아 공장에서, 루마니아 산업 역량으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해외 부품을 가져와 조립만 하는 수준을 넘어, 차체 제작부터 시스템 통합까지 핵심 공정을 루마니아 기업이 주도하게 됨을 의미한다.

담보비차에 방산 생태계 조성… 일자리 2000개 창출


한화의 제안이 현실화하면 루마니아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담보비차 생산 시설이 가동되면 직접 고용과 간접 고용을 합쳐 일자리 2000여 개가 새로 생길 것으로 추산된다.

한화는 이미 루마니아 현지 부품 업체부터 정밀 제조 기업까지 30여 개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배 법인장은 앞으로 현지 공급망을 100개 기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부가가치 대부분이 루마니아 안에 머물고, 현지 기업들이 첨단 기술에 접근할 기회를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루마니아 중소기업(SME)의 체질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루마니아가 독자적 무기체계를 개발할 수 있는 산업적 토대를 닦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K9·피라냐5와 부품 호환… 군수지원 효율 극대화


군사적 효용성 면에서도 레드백은 경쟁 기종인 링스(Lynx) KF41보다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큰 강점은 상호 운용성(Commonality)’이다. 레드백은 루마니아가 이미 도입을 확정한 K9 자주포와 엔진,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계통을 공유한다. 또한, 루마니아군 주력 차륜형 장갑차인 피라냐 5’와도 포탑 시스템 호환이 가능하다. 레드백에 탑재된 엘빗(Elbit)사의 MT-30 포탑은 피라냐 5UT-30 포탑을 개량한 모델이다.

반면 라인메탈의 링스는 35mm 기관포를 탑재한 랜스(Lance) 2.0 포탑을 사용하는데, 이는 현재 루마니아군이 운용하지 않는 독자 규격이다. 이를 도입하려면 새로운 탄약 체계와 정비 라인을 별도로 깔아야 해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군사 전문가들은 부품과 정비 체계를 통일하면 운영 유지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시 상황에서 부품 조달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고 분석했다.

호주가 검증한 성능… 레드백의 압승


레드백의 성능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을 마쳤다. 호주 육군의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도입 사업(LAND 400 Phase 3)에서 레드백은 2년 넘게 진행된 혹독한 시험 평가 끝에 라인메탈의 링스를 제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당시 평가에서 레드백은 기동성, 방호력, 승무원 생존성 등 대부분 지표에서 링스를 앞섰다. 특히 승차감이 우수해 승무원 피로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현장 평가를 받았다.

제이크 서(Jake Seo)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최고기술책임자(CTO)루마니아 엔지니어들은 K9과 레드백 생산 과정을 통해 차체 제작, 유압 시스템, 통신 장비 통합 등 필수 기술을 습득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기술 이전은 루마니아가 자체적으로 장비를 개량하고 유지·보수할 능력을 갖추는 데 필수라고 설명했다.

한화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 레드백(왼쪽)과 라인메탈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 KF-41 링스가 2021년 10월 호주 육군의 랜드 400 3단계 대회의 일환으로 뉴사우스웨일스주 HMAS 쿠타불에서 열리는 해상 운송 시험을 위해 HMAS 애들레이드에 탑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호주 디펜스이미지 확대보기
한화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 레드백(왼쪽)과 라인메탈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 KF-41 링스가 2021년 10월 호주 육군의 랜드 400 3단계 대회의 일환으로 뉴사우스웨일스주 HMAS 쿠타불에서 열리는 해상 운송 시험을 위해 HMAS 애들레이드에 탑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호주 디펜스


기술 주권원하는 동유럽, 한화의 모델 주목


루마니아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 국가 안보의 자립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EUSAFE 기금을 활용하더라도 결국 상환해야 하는 빚인 만큼, 루마니아 정부가 자국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라인메탈은 헝가리 공장을 앞세워 유럽 내 공급망을 강조하지만, 핵심부품 생산은 여전히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완전한 기술 이전현지 완결형 생산을 약속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배 법인장은 국방 획득 사업은 정치적 셈법이 아니라 군인이 필요로 하는 성능과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한화는 루마니아와 함께 성장하며 유럽 안보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30년 납기 준수 능력과 호주에서의 승리 경험, 여기에 파격적인 현지화 제안까지 더해지면서 루마니아 IFV 수주전의 무게추가 한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K9·레드백, 심장(Engine)을 공유… 군수지원 통합으로 운영 효율 극대화


군사 전문가들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주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또 다른 결정적 이유는 바로 부품 표준화(Standardization)’에 따른 압도적인 효율성이다. 루마니아가 이미 도입을 확정한 K9 자주포와 이번에 제안된 레드백은 사실상 한 몸이나 다름없는 기술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

두 장비는 기동 체계의 핵심인 엔진과 변속기, 파워팩(Powerpack)’을 공유한다. 이는 단순히 부품 몇 개가 같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군수지원 분야 전문가들은 주력 자주포와 보병전투장갑차가 동일한 심장을 쓴다는 것은 군수 보급의 복잡성을 절반으로 줄이는 혁신이라고 평가한다. 전시에 엔진 오일, 필터, 트랙(궤도) 부품 등을 별도로 분류해 보급할 필요가 없어 작전 지속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 효과도 명확하다. 통상 무기체계의 총수명주기비용(Life Cycle Cost) 중 도입비는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30년 이상의 운용 기간 들어가는 유지보수(MRO) 비용이다. K9과 레드백의 부품이 호환되면 루마니아군은 예비 부품 재고를 통합 관리할 수 있어 막대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정비 인력 양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K9을 정비할 줄 아는 엔지니어는 별도의 장기간 교육 없이도 레드백의 구동 계통을 즉시 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숙련된 정비병 부족에 시달리는 유럽 각국 군대에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다. 실제로 호주 육군은 K9의 호주형 모델(AS9)과 레드백을 동시에 채택함으로써, 훈련 체계를 단일화하고 군수지원 최적화를 달성해 보였다.

한화의 제안은 단순한 장갑차 판매가 아니라, K9 자주포와 레드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합 지상전력 패키지를 통해 루마니아 국방력의 질적 도약을 보장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