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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메모리 제왕' 삼성의 역설…노태문, CES서 마이크론 찾아 "D램 좀 달라"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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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메모리 제왕' 삼성의 역설…노태문, CES서 마이크론 찾아 "D램 좀 달라" SOS

갤S26 출시 앞두고 LPDDR5X 가격 2배 폭등·물량 부족…HBM 올인한 DS사업부 빈자리에 '공급 대란'
CES 2026서 마이크론 CEO와 긴급 회동…차세대 'LPDDR6' 기술 격차 과시 속 현실은 '물량 구걸'
삼성전자 MX사업부는 '갤럭시 S26' 출시를 앞두고 모바일 D램 가격 폭등과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경쟁사인 마이크론과 긴급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 MX사업부는 '갤럭시 S26' 출시를 앞두고 모바일 D램 가격 폭등과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경쟁사인 마이크론과 긴급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사진=로이터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의 모바일(MX) 사업 사령탑이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수장을 찾아가 물량 공급을 요청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삼성 반도체(DS) 부문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정작 자사 스마트폰인 '갤럭시 S26'에 탑재할 모바일 D램(LPDDR)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12일(현지 시각)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 아시아는 딜사이트 등 국내 매체 보도를 인용해,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이 내년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 현장에서 산자이 메로트라(Sanjay Mehrotra) 마이크론 CEO와 긴급 회동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갤S26' 생산 차질 우려…콧대 꺾고 경쟁사 찾는다


통상적으로 CES 기간에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간의 별도 회동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삼성 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6' 출시가 임박한 상황에서 핵심 부품인 LPDDR5X D램의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이 생산 계획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초 약 30달러 수준이던 12기가바이트(GB) LPDDR5X 모듈 가격은 11월 말 기준 약 70달러까지 치솟았다. 1년 새 두 배 넘게 뛴 셈이다. 이는 AI 붐으로 인해 삼성전자 DS 부문을 비롯한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이 수익성 높은 HBM 생산에 라인을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모바일용 범용 D램 생산 여력이 줄어든 탓이다.

디지타임스는 "이번 회동은 단순한 상견례가 아니라 물량 확보를 위한 실무적 담판 성격이 짙다"며 "삼성 MX사업부는 가파른 가격 상승 탓에 아직 마이크론이나 자사 DS 부문과 LPDDR5X 공급 계약을 최종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딜레마…DS는 HBM, MX는 비용 압박


삼성 내부의 미묘한 갈등 기류도 감지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 부문은 최근 MX사업부와의 모바일 D램 공급 계약을 장기 계약이 아닌 '분기별 계약'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HBM과 AI 가속기용 저전력 D램 공급을 최우선순위로 두는 DS 부문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MX사업부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퀄컴 스냅드래곤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2025년 3분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지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나 급증한 상황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정이라는 이중고를 떠안게 됐다. 스마트폰 부품 원가(BOM)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AP와 메모리 가격이 동시에 뛰면서 수익성 방어에 비상등이 켜졌다.

마이크론, 갤럭시 공급망서 '실세' 등극


이 틈을 타 마이크론은 삼성 갤럭시 공급망 내에서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있다. 마이크론은 이미 '갤럭시 S25' 출시 초기 약 3개월간 LPDDR5X 물량을 단독 공급하며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마이크론은 올해 4월 고효율 '1베타(1β)' 버전을 선보인 데 이어, 하반기에는 차세대 '1감마(1γ)' 버전 샘플을 테스트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업계에서는 품질 테스트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1감마 제품이 갤럭시 S26의 주력 메모리로 채택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삼성 MX사업부가 가격 조건만 맞는다면 마이크론에 상당한 물량을 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마이크론이 갤럭시 공급망 내에서 '우선 공급자(elevated vendor)' 지위를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기술은 삼성이 '압도'…CES서 LPDDR6 승부수


당장의 수급난과는 별개로, 삼성전자는 차세대 기술 리더십 수성에 나선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CES 2026에서 차세대 모바일 D램 표준인 'LPDDR6' 제품을 전격 공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1c 공정 기반 LPDDR6는 기존 LPDDR5X 대비 성능은 약 11%, 전력 효율은 약 21%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데이터 대역폭을 최대 1.5배 늘려, 모바일 기기 자체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을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삼성은 이르면 2026년 2월 출시될 갤럭시 S26 일부 모델에 LPDDR6를 선제적으로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하이닉스가 2026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추격 중이고, 중국의 CXMT(창신메모리)가 LPDDR5X 양산에 이어 LPDDR6를 준비하며 맹추격하고 있지만, 아직 삼성전자는 글로벌 모바일 D램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기술과 시장 지배력 면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Editor’s Note]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를 계열사로 둔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장이 경쟁사 CEO를 찾아가 부품을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상황은, 현재 반도체 시장이 얼마나 기형적인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AI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모든 고성능 메모리 자원을 빨아들이면서, 스마트폰 같은 전통적인 IT 기기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형국입니다. 삼성전자로서는 DS 부문의 HBM 수익 극대화와 MX 부문의 원가 경쟁력 확보라는, 상충하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2026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