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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트럼프 관세' 판결 초읽기…515조 '세금 폭탄' 터지나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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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트럼프 관세' 판결 초읽기…515조 '세금 폭탄' 터지나 사라지나

폴리마켓 "행정부 패소 확률 76%"… IEEPA 권한 남용 여부 판가름
관세 철폐 시 세계 성장률 0.2%p↑… 미 재정적자·국채 금리 변수
한국 산업계 '초긴장'… "관세 환급 기대 속 '플랜B' 가동해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앞세워 부과한 10~40%의 고율 관세가 적법한지 조만간 확정한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 무역 적자를 이유로 비상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미 연방 대법원 모습=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앞세워 부과한 10~40%의 고율 관세가 적법한지 조만간 확정한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 무역 적자를 이유로 비상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미 연방 대법원 모습=로이터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앞세워 부과한 10~40%의 고율 관세가 적법한지 조만간 확정한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 무역 적자를 이유로 비상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된다.

미국 경제주간지 배런스는 지난 14(현지시각)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대법원 판결에 따른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무역 적자가 국가 안보와 경제를 위협한다며 IEEPA를 발동, 거의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상호 관세'를 매겼다. 하급 법원은 두 차례에 걸쳐 이 관세가 불법이라고 판결했고, 행정부가 불복해 대법원이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내년 초에는 결론을 낼 것으로 본다.

예측 시장은 행정부의 패배를 점친다.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은 대법원이 행정부에 불리한 판결을 내려 IEEPA 관세 중 일부를 무효로 할 확률을 76%로 예상했다.

시나리오 1, 절충형 판결… "안보는 인정, 경제는 불허"


첫 번째 가능성은 대법원이 '절충안'을 택하는 경우다. 펜타닐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한 중국과 캐나다 대상 관세는 유지하되, 순수하게 경제적 이유로 부과한 광범위한 상호 관세는 불법으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크로우엘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모니카 고먼 전 상무부 관료는 "법원이 펜타닐과 같은 국가 안보 문제는 건드리지 않으려 하겠지만, 경제적 동기의 관세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법원이 헌법적 쟁점을 피해 판결 범위를 좁힐 수도 있다. 킹앤스폴딩의 라이언 마제러스 파트너는 "법원이 비상 조항 사용에 대한 정당성 입증 기준을 마련해 대통령의 권한이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것을 막는 '중간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관세 유지 기간을 제한하기보다는 관세 해제 조건을 명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수입업체들은 관세 환급이라는 혜택을 입게 된다. 하지만 채권시장에는 악재다. IEEPA 관세가 올해 관세 수입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2, IEEPA 관세 전면 불법화... "환급 대란과 국채 금리 상승"

두 번째는 대법원이 IEEPA 관세 전체 혹은 대부분을 불법으로 판결하는 경우다. 핵심 쟁점은 이미 납부한 관세의 환급 절차다.

스콰이어 패튼 보그스의 에버렛 아이젠스탯 전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은 "대법원이 구체적인 환급 절차를 직접 정하기보다는 국제무역법원(CIT)으로 사건을 돌려보내거나 다른 행정 기관에 위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 입장에서는 막대한 행정 부담을 떠안게 된다.

경제적 파장도 복합적이다. 연간 약 3500억 달러(515조 원)에 이르는 관세 수입이 사라지면 미국의 장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장기 국채 금리가 뛸 수 있다. 반면 관세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줄어들면서 단기 금리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관세가 전면 철폐될 경우 실효 관세율이 약 5%포인트 낮아져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시나리오 3, 행정부 승소... "대통령 권한의 무기화"


세 번째는 대법원이 하급심을 뒤집고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다. 통계적으로 대법원은 심리 사건의 약 70%에서 하급 법원 판결을 파기해 왔다.

이 경우 시장의 불확실성은 해소되겠지만 정치적 파장은 크다. 아이젠스탯 전 부위원장은 "의회에서 행정부로 권력의 중심이 완전히 이동하는 결과"라며 "관세가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한 대통령의 만능 도구처럼 쓰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향후 정권에서도 통상 정책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판결 이후, "무역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백악관의 보호무역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주 행정부가 IEEPA 관세 수입을 대체할 다른 수단을 이미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백악관은 ▲로봇·산업기계·반도체 등에 대한 섹터별 관세 조사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 ▲국제수지 위기 시 관세를 허용하는 122조 활용 등 다양한 우회로를 검토 중이다. 이미 체결된 예비 무역 합의들도 안보 이슈와 결부되어 있어 쉽게 파기되기 어렵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커트 라이만 채권 책임자는 "IEEPA 이후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줄어들더라도 행정부는 여전히 무역 전쟁을 억제할 레버리지를 쥐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변수는 미국 내 여론이다. 경제 상황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추가적인 관세 인상은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실효 관세율은 10% 중반대에서 억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젠스탯 전 부위원장은 "이번 판결이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새로운 소송과 관세 권한 발동이 이어지면서 통상 정책의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수출기업 '운명의 일주일'... 환급 기대 속 '환율 변동성' 경계해야


미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태풍의 눈'이다. 판결 결과에 따라 국내 주요 수출기업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자동차, 철강, 가전 등 주력 수출 업계는 대법원이 행정부 패소 판결을 내릴 경우를 최상의 시나리오로 꼽는다. 이미 납부한 막대한 관세를 돌려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영업이익률에 타격을 주던 10~20%의 추가 관세가 사라지면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서울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관세 철폐가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는 그동안 '강달러'를 지지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관세 무효화로 달러 약세가 가속하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은 환율 변동으로 다시 악화할 수 있다.

반면 행정부가 승소하거나 절충형 판결이 나오면 불확실성은 장기화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IEEPA가 막히더라도 무역법 301조나 특정 품목(반도체 등)을 겨냥한 섹터별 조사를 강화할 공산이 크다""기업들은 관세 환급 기대감에 의존하기보다 공급망 다변화와 현지 생산 확대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무역 전쟁의 시작일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정교한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