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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9200만 불 ‘돈맥’ 풀어 양자컴퓨팅 사수…“미국 기술 블랙홀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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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9200만 불 ‘돈맥’ 풀어 양자컴퓨팅 사수…“미국 기술 블랙홀 막아라”

자나두 등 ‘양자 4대장’에 국방 예산 수혈…나스닥 상장으로 5조 원 잭팟 조준
트럼프 ‘기술 쇄국’에 맞불…“안보가 곧 기술” 한국형 DARPA 시급
캐나다 정부가 미국의 거센 공세에 맞서 자국 양자컴퓨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9200만 캐나다달러(약 981억 원)를 긴급 투입한다. 자국 양자컴퓨팅 기업의 몸집 불리기를 돕고 핵심 두뇌의 미국 유출을 차단하고자 이 같은 자금 지원책을 확정했다. 사진=자나두 퀀텀 테크놀로지스이미지 확대보기
캐나다 정부가 미국의 거센 공세에 맞서 자국 양자컴퓨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9200만 캐나다달러(약 981억 원)를 긴급 투입한다. 자국 양자컴퓨팅 기업의 몸집 불리기를 돕고 핵심 두뇌의 미국 유출을 차단하고자 이 같은 자금 지원책을 확정했다. 사진=자나두 퀀텀 테크놀로지스
캐나다 정부가 미국의 거센 인재 진공청소공세에 맞서 자국 양자컴퓨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9200만 캐나다달러(981억 원)를 긴급 투입한다. 이는 단순한 과학 기술 지원을 넘어 국방 전략과 연계해 기술 주권을 사수하려는 포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6(현지시간) 캐나다 정부가 자국 양자컴퓨팅 기업의 몸집 불리기를 돕고 핵심 두뇌의 미국 유출을 차단하고자 이 같은 자금 지원책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국방 전략과 맞물린 양자 챔피언육성


에반 솔로몬 캐나다 인공지능(AI) 장관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애니온 시스템즈(Anyon Systems), 노드 퀀티크(Nord Quantique), 포토닉(Photonic), 자나두 퀀텀 테크놀로지스(Xanadu Quantum Technologies) 4개사에 지원금을 배분한다고 밝혔다. 자금은 캐나다 정부가 지난달 예산안에서 양자 분야 강화를 위해 책정한 33400만 캐나다달러(3560억 원, 5년간) 1단계 집행분으로, 일명 캐나다 양자 챔피언 프로그램의 시발점이다.

이번 지원의 핵심은 국방 산업 전략과의 연계다. 장관실은 양자컴퓨팅 기술은 암호화, 첨단 소재, 신호 처리, 위협 분석을 위한 패턴 인식 등 국방 분야에서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과 합의한 대로, 오는 2035년까지 국방 및 관련 인프라 지출을 국내총생산(GDP)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양자 기술 육성을 국방비 증액과 연동해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셈법이다.

마크 카니 총리가 이끄는 캐나다 정부는 기존 컴퓨터보다 월등히 빠른 연산 속도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자역학 분야에서 캐나다가 보유한 우위를 지키는 데 사활을 걸었다. 이는 최근 미국이 막대한 자본과 정책을 앞세워 전 세계 최고급 두뇌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격화되는 북미 기술 패권 경쟁…트럼프 행정부 기술 쇄국에 맞불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양자컴퓨팅 패권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10년 안에 유용하고 결함 없는(fault-tolerant)’ 양자컴퓨터를 구축하겠다며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노드 퀀티크, 포토닉, 자나두가 DARPA 프로젝트의 2단계 사업자로도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기업들이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자칫 미국의 자본 논리에 종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AI, 바이오공학,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미국 기술과 표준이 세계를 주도해야 한다고 천명하며 기술 패권주의를 노골화했다. 캐나다의 이번 조치는 이러한 미국의 기술 블랙홀전략에 맞서 자국 기업이 캐나다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방어막 성격이 짙다.

자나두 CEO “미국 유혹 뿌리칠 명분 생겨…나스닥 상장도 추진


캐나다 양자컴퓨팅의 선두 주자인 자나두의 크리스찬 위드브룩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정부 발표를 크게 반겼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캐나다가 진정으로 발 벗고 나섰으며, 어떤 면에서는 미국의 DARPA를 능가하는 지원책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위드브룩 CEO돈이든 인재든 미국의 흡인력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미국은 사람들을 유혹하려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고 있지만, 이번 지원으로 우리가 캐나다에 남아야 할 강력한 근거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자나두는 자본 확충을 위해 미국 증시 상장도 동시에 추진한다. 자나두는 지난달 미국 기업인수목적회사(SPAC)크레인 하버와의 합병을 통해 상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약 5억 달러(7340억 원)를 조달할 예정이며, 합병 후 기업가치는 약 36억 달러(529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상장이 완료되면 자나두 주식은 나스닥과 토론토 증권거래소에서 동시에 거래된다.

안보가 된 기술…한국형 ‘DARPA’ 더는 미룰 수 없다


이번 캐나다의 양자컴퓨팅 지원 사격은 미·중 기술 패권 전쟁 틈바구니에 낀 한국 첨단 산업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캐나다는 단순히 보조금을 주는 수준을 넘어, 양자 기술을 국방 필수재로 규정하고 NATO 방위비 분담 목표와 연계해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는 기술 보호가 곧 국가 안보라는 인식을 행동으로 옮긴 사례다.

한국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AI, 반도체, 양자 기술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 빅테크 기업이나 연구소로 빠져나가는 두뇌 유출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 기술 정책은 이러한 쏠림을 더욱 가속할 것이다.

캐나다의 사례처럼 우리 정부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집행할 때 단순히 산업 육성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 전략이나 국방 역량 강화와 결합한 과감한 스케일업(Scale-up) 정책을 펴야 한다. 엄격한 선별 지원만으로는 수조 원 단위의 자금을 쏟아붓는 미국과 중국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특히 방위 산업 강국으로 도약 중인 한국의 이점을 살려, 국방 분야가 첨단 딥테크(Deep Tech) 기업의 초기 시장이자 테스트베드가 되어주는 한국형 DARPA’ 모델의 실질적 가동이 시급하다. 기술 주권 없이는 경제도, 안보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