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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사실상 철회…전기차 전환 급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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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사실상 철회…전기차 전환 급제동

中 BYD 유럽 점유율 300% 급증에 유럽 완성차 압박, 4년 만에 정책 후퇴
포드 190억 달러 전기차 투자 포기…현대차·기아는 125조 원 베팅 고수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사실상 철회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사실상 철회했다.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사실상 철회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6(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원회가 내연기관차 판매를 조건부로 허용하는 개정안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 전기차와 경쟁에서 밀린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BYD 판매 300% 급증…유럽 업체 '백기'


EU는 지난 2023년 유럽 그린딜의 핵심 정책으로 2035년부터 판매되는 모든 신차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의무화했다. 이는 사실상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2035년 이후에도 2021년 대비 90% 수준의 배출가스 감축만 달성하면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보케 훅스트라 EU 기후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제조사들에게 일정한 유연성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친환경 철강을 사용하거나 전기차 주행거리 연장용 소형엔진을 장착하는 방식 등을 조건부로 허용한다.

이번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거센 공세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비야디(BYD)는 올해 1~9월 유럽 시장에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00% 급증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BYD는 지난 5월 유럽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올랐으며, 이후에도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폴크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유럽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고가 전기차 위주 전략으로 대중시장 공략에 실패했다. 이들 업체의 시가총액은 급락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 등 자동차 산업 비중이 큰 국가들은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2035년은 물론 2050년에도 전 세계 도로에는 수백만 대의 내연기관 차량이 있을 것"이라며 정책 후퇴를 환영했다.

포드, 190억 달러 전기차 사업 접어…트럼프 정책 영향


미국 포드자동차도 15일 전기차 생산 계획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포드는 190억 달러(28조 원)를 투입한 전기차 사업을 접고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하기로 했다. 테네시주 공장에서 가솔린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대신, 주력 전기차 모델인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은 중단한다.

포드는 성명에서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옵션 확대를 통해 더 높은 수익 기회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전기차를 "비싼 사기극"이라고 비난하며 전기차 인센티브를 삭감하고 연비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볼보와 포르쉐, 스텔란티스(지프·피아트 모기업) 등도 올해 초 전기차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독일 보훔 자동차연구센터의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이 미국(가솔린), 중국(전기차), 유럽(혼란) 등 세 갈래로 분열되고 있다""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자동차 산업 규칙을 정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기아, 대규모 투자로 '전기차 승부수'


서구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오히려 전기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 2월 열린 '2025 EV 데이'에서 2026년까지 전기차 판매 100만 대, 2030년까지 160만 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2026년 목표(807000)보다 25%, 2030년 목표(120만 대)보다 33% 높인 수치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2000억 원을 투자하며, 이 중 신사업 투자 505000억 원의 상당 부분이 전동화에 집중된다. 현대차는 최근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9을 출시했으며, 기아는 전기 세단 EV4와 중형 목적기반차량(PBV) PV5를 올해 안에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EU의 정책 후퇴로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다소 둔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전동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며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 등 지역별 맞춤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글로벌 확장이 한국 업체들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 BYD는 올해 유럽 판매량을 80~100만 대로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헝가리 공장에서 연간 15만 대 생산을 시작한다. BYD는 다양한 가격대의 전기차 라인업과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으로 글로벌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분석가 마티아스 슈미트는 "고급 브랜드인 포르쉐, BMW, 메르세데스의 핵심 고객층은 기계적 성능과 엔지니어링을 중시한다""이번 정책 완화는 이들에게 내연기관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면허를 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조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유럽녹색당의 불라 체치 공동대표는 "탄소중립은 절반의 조치나 오염 기술 허용으로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EU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